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광개토태왕(드라마)/비판 (문단 편집) == [[역사 왜곡]] == >'''"그 바탕을 깔아주는 과정이 생각보다 길었지만 역사 왜곡은 없었다."''' >- 김종선(감독) [[http://star.ohmynews.com/NWS_Web/OhmyStar/at_pg.aspx?CNTN_CD=A0001630742|#]][* 전작도 그렇지만 애당초 제작자나 감독이 직접 스스로 만든 작품을 까는 것은 스스로의 커리어와 함께 자폭하는 것이므로 저렇게 답변하는게 당연하긴 하다. 문서를 읽어보면 알겠지만 이 작품의 실제 역사와의 불일치 정도는 [[기황후(드라마)]]와 쌍벽을 이루는 수준이거나 '''그 이상'''이다. 아무리 역사 왜곡이 심한 사극이라도 기본적인 스토리는 실제 역사의 틀을 따라가기 마련인데 이 드라마는 그것조차 없었다.] 드라마 특성상 사극에선 작가의 창작이나 각색이 들어가는 경우가 흔하나 이 드라마에서는 스토리 창작이나 각색 수준을 넘어서 아예 소설 수준이었다. 특히 고구려[* 물론 삼국시내 전체적인 사료는 신라가 가장 많으나 이건 신라가 200년 더 존속해서 그렇고, [[광개토대왕]] 시기인 4세기 까지는 고구려사료가 신라보다 압도적으로 많다. 특히 광개토대왕 시기 기록 양은 비교불가. 일단 광개토대왕릉비 하나만으로 당시 신라, 백제 기록 합친거보다 많다.]는 광개토대왕시기에는 사료가 제일 많은 왕이기 때문에 기록이 부족하여 어쩔 수 없이 역사를 창작했다는 변명조차 할 수가 없다. 그런데 이런 빼도 박도 못한 사실을 가지고 감독이란 분이 [[역사 왜곡]]이란 없었다고 현실부정을 했으니 기가 찰 따름.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