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광명시/역사 (문단 편집) ==== 광명시 승격 ==== [[파일:attachment/광명시/역사/gwangmyeong-1981_1.jpg]] 1981년 시 승격 당시 광명시 모습 1970년대 당시 서울집중 현상이 뜨거운 문제로 부상하자[* 당시 정부에서는 서울시 적정 인구의 마지노선을 800만으로 잡았는데 1970년대에 벌써 초과해버렸다...] 서울집중 억제를 위한 위성도시 육성의 일환으로 광명은 '''서울 편입에서 배제'''되고[* 만일 당시 시흥군 광명출장소 인구를 합해도 서울 인구가 800만도 안되는 상황이었다면 최소한 광명동과 철산동이라도 서울에 편입되었을 가능성이 높았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정확히는 최규하때까지는 박정희 시절의 서울 추가 확장계획을 폐기하지 않아 시 승격 여부를 두고 갈팡질팡하다가 전두환의 5공 정부가 집권하면서 본격적으로 위성도시 육성 정책을 취하면서 이렇게 된 것이다.], 대신 남부의 시흥군 소하읍[* 현재의 학온동, 하안동, 소하동, 일직동 일대][* 법적으로는 광명출장소 지역도 소하읍이긴 했다. 즉, 행정구역상 주소명은 예를 들자면 경기도 시흥군 광명출장소 철산리가 아닌 경기도 시흥군 소하읍 철산리.]과 묶어서 1981년 7월에 [[경기도]] 산하의 [[광명시]]로 시 승격이 되었다. 서울 편입이 무산된 데는 서울 집중 문제 뿐만 아니라 시흥군의 군세가 축소되는 것에 대한 고민도 있었다고 한다.[[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7081500209202017&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77-08-15&officeId=00020&pageNo=2&printNo=17189&publishType=00020|#]] ~~근데 서울시로 편입되나 광명시로 승격되나 시흥군세가 줄어드는 건 마찬가지 아닌가?~~ '''서울 편입 떡밥'''에 대해서는 [[행정구역 개편/수도권/서울개편론/광명시 서울 편입|관련 항목]]을 참조할 것. 광명시 북부와 같이 서울특별시 도시계획구역에 속했던 고양시 옛 신도면 지역과 남양주시 별내동 일부, 구리시 갈매동, 부천시 오정구 일부, 과천시 일대가 해당 지역이 시 승격이 되어서도 몇 년 동안 서울시 도시계획구역에 속했지만, 유독 광명시 북부만이 시 승격 1년 만에 서울시 도시계획구역에서 해제되었다는 사실은 광명시가 광명시 일대의 서울 편입을 배제하기 위해 만든 도시(행정구역으로서의 도시)라는 점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서울 도시계획 해제 직후에 당시 재정이 빈약했던 광명시 측에서 서울시 측에 도시개발자금을 달라고 징징거렸던 흑역사가 있다.[[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3020700099211006&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83-02-07&officeId=00009&pageNo=11&printNo=5208&publishType=00020|기사]] [[http://theme.archives.go.kr/viewer/common/archWebViewer.do?bsid=200300839933&dsid=000000000023&gubun=search|시 승격 계획안에 따르면 서울시로의 인구집중을 억제할 목적으로 광명시 승격이 추진되었다고 나와 있다.]] 광명시 승격 및 서울 편입 무산에 실망한 광명주민들이 서울 편입을 요구하는 시위를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철산리 시절부터 살아온 광명주민의 증언) 1983년에 시흥군 소래읍 관할이던 옥길 1, 3리가 광명에 편입되면서 현재 광명시의 모습이 갖춰진다. [[파일:attachment/광명시/역사/1982urbanplanning-map2.jpg]] 1982년 12월 28일 광명시 도시계획구역 신설로 서울시, 안양시 도시계획에서 해제된 모습 [[파일:attachment/광명시/역사/gwangmyeong-1983.jpg]] 1983년 옥길동 편입 이후 광명시 모습 승격이 되고 난 뒤 1982년에 광명시 북부의 대부분이 서울특별시 도시계획구역에서 해제되어 광명시가 독자적으로 도시계획을 수립할 수 있게 됨으로써 1980년대 초중반 이후로 철산동, 하안동 일대에 대규모의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었는데, 이때 건설된 아파트 단지들은 철산주공 4,7,8,9,11,12,13단지와 하안주공 전 단지(구 하안주공 본1,2단지 제외)와 독산주공14단지. 그리고 현재의 철산상업지구가 이때에 조성되었다. 즉, 서울시를 배후로 하는 주거기능 위주~~베드타운~~의 위성도시로 개발된 것. 1993년에 광명실내체육관과 광명시립도서관(현 하안도서관)이 세워졌고, 1994년경에 [[안양천]]과 [[목감천]]의 광명지역 둔치가 공원과 자전거도로로 조성되었다. 시 관할구역은 광명 1-7, 철산 1-4, 하안 1-4, 소하 1-2, 학온동이다. 1986년에는 1983년에 광명시로 편입된 옥길동이 광명시 도시계획구역에 편입되었다. 1987년에는 안양시 박달동, 석수동과의 일부 경계조정이 이루어졌다. 석수동 중에서 서울전화를 쓰는 곳이 원래 광명이었던 동네. 반대로 현 광명역 부지는 원래 석수동이었다. 때문에 처음 남서울역 부지가 발표되었을 때는 안양시 석수동이라고 발표했다가 뒤늦게 정정보도를 내기도 했다. 1992년에는 하안동 일부(지금의 세이브존 부지)가 철산동에 편입되는 등 법정동, 행정동 경계조정이 이루어졌다. [[파일:attachment/광명시/역사/gwangmyeong-1995.jpg]] 1995년 경계조정 이후 현재의 광명시 모습 현재의 행정동 구역이 설정된 것은 1995년. 그 해에 광명시와 서울시 간의 미세한 경계 조정이 이루어졌다.[* 엄밀히 말하면 [[목감천]] 쪽은 1:1 교환 형식의 경계조정이었고 안양천 쪽은 경계조정이라기 보다는 철산3동 월경지가 서울시에 편입된 것에 가깝다.] 이때 당시 광명시의 가장 큰 실질월경지였던 철산3동 일부가 서울시로 편입되었다. [[파일:attachment/광명시/역사/2001urbanplanning-map2.jpg]] 2008년에 도시계획구역이 실제 행정구역 경계에 맞게 재조정되었다. (지도 출처: [[광명시청]] 자료) 2014년 8월에 시 휘장과 마스코트가 전격 변경되었다. [[광명시]] 참조.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