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광명시/역사 (문단 편집) == [[대한민국]] == [[파일:attachment/광명시/역사/gwangmyeong-1949_2.jpg]] 1949년에 지금의 구로동, 대림동, 신도림동, 신대방동이 서울시로 편입되면서 시흥군의 땅이 더욱 줄어들기 시작했다. 구로동이 서울로 편입되어 '''광명은 서울과 접경하게 되었다.''' --그러나 1963년 서울 대확장 당시 서울 편입 대상에 포함되지 못한 건 에러-- [[파일:attachment/광명시/역사/seoul-1963.jpg]] 이 지역에 대격변이 일어난 것은 1963년 서울시 대확장으로 시흥군의 안양천 동쪽부분인 현내면(동면)이 서울 [[영등포구]]에 편입된 것이 시작이다. 현내면은 조선시대 내내 시흥현의 중심지로, 시흥=현내면 이라는 인식이 자리잡고 있는 시흥의 상징과도 같은 지역이었다. 따라서 시흥군 입장에서 현내면이 사라진 것은 시흥이라는 지역의 정체성이 사라진 것이었다. 이후 시흥군의 각 면들은 현 경기도 서남부의 도시군으로 갈라지게 된다. 옛 시흥군의 자세한 변천 내력은 [[시흥군]] 항목과 [[한국어 위키백과]]의 [[https://ko.m.wikipedia.org/wiki/시흥군|시흥군]] 항목 참조. 이 때 서면 박달리가 안양읍으로 편입되었다. 1961년경 시흥군 문서에 나온 회의록에 따르면 도덕산 산맥을 기준으로 서면 서부(광명동, 학온동)을 소래면에 넘기고 서면 동부(철산동, 하안동, 소하동)를 동면에 통합시키자는 제안이 언급된다(...). [[http://theme.archives.go.kr/next/pages/viewer/archiveViewer.jsp?archiveEventId=0015910669&singleData=Y|링크(97쪽)]]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