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광주광역시/정치 (문단 편집) ==== 제3장: [[제15대 대통령 선거]] ==== 그러나 1995년 연말에 [[김대중]] 전 총재가 정계에 복귀하고 민주당에서 [[동교동계]]를 끌어와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하면서 다시 광주광역시 유권자들은 결집했다. 다음 해인 [[1996년]]에 열린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정치국민회의가 [[광산구]]를 제외한 모든 선거구에서 80% 이상의 압도적인 득표율로 당선되었는데, 이는 제13대 국회의원 선거 못지 않은 압도적인 지지로 광주광역시 유권자들이 김대중 후보에게 보낸 환호의 메시지나 다름없었다. 결국 그동안의 실패를 교훈 삼아 [[DJP연합]], 참신한 대선 전략 등을 펼치며 중도표를 공략한 김대중 후보는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에서 40.27%를 득표해 4번째 만에 당선에 성공하였다. 이것이 진짜 마지막 기회였던 만큼 광주광역시 유권자들은 사상 유례가 없는 초결집을 이룬다. 광주광역시 시민들은 무려 '''97.28%'''라는 역대 최고의 지지를 보내면서 김대중 전 대통령의 당선에 압도적으로 기여를 했다. TK에서 확실한 우세를 보였던 당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도 대구광역시·경상북도에서 70%대 초중반의 득표율[* 다만 이는 [[이인제]] 쪽으로 보수표가 분열된 것의 영향도 있다. 이 대선에서의 김대중의 광주광역시 득표율과 비견되는 득표율은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서 [[박근혜]]가 대구광역시에서 얻은 80.1% 이다.]이었던 것만 봐도 엄청난 지지였다. 이는 독재 세력 및 그 후신만은 절대로 집권을 내줄 수 없다는 광주광역시 유권자들의 선택과 집중이 총결산된 것이었다. 이 기록은 대한민국 선거 역사상 (단독 출마 제외 시) 최다 득표율 기록이기도 하며, 그 뒤로 광주광역시의 그 어떤 선거에서도 이런 득표율은 지금까지 나오지 않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