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광주민주화운동진상조사특별위원회 (문단 편집) === 명칭에 대한 학계의 비판 === 민주화운동이란 단어는 근현대사를 주로 다루는 사학자들한테 상당히 비판을 받고 있다. 광주항쟁이 일어난 원인은 내란세력이 벌인 폭력에 대한 저항권이였다. [[하나회]] 출신인 [[신군부]]라는 [[내란]]세력은 민주화 흐름을 거부하고 [[쿠데타]]를 일으켰다. 그 과정에서 공수부대를 내보냈고, 공수부대는 시위대뿐만 아니라 무관한 시민들까지 무차별로 공격하고 대검살상까지 저질렀다. 이에 분노한 시민들은 사전계획 없이 '성난민중'으로 돌변해서 격렬하게 저항하고 투쟁한 것이다. 보다시피 과격 민주화 운동이 아니라, [[저항권]]에 따라 맞서 폭력을 쓴 것이다. 즉 전두환이 이끄는 신군부 반란군의 학살에 맞서, 국민의 생명권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자발적으로 시민군을 조직하여 국민의 생명을 수호한 사건이다. 광주 시민들에게는 [[민주화]]이전에 [[생존]]의 문제였다. 당시 광주시민들의 심리를 깊게, 사회학으로 분석한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최정운, 오월의 사회과학, 2012 이다. 당시 이 책을 보면 시민들이 계엄군한테 어떠한 공포를 느꼈는지를 알 수 있다. 이렇게 10일간 격렬했던 현장상황을 '민주화운동'이란 규정하는건 알맞지 않다는 것이 [[김영택(1936)|김영택]] 박사가 지적한 것이다. 외국의 학자들이나 매스컴은 '지금(2010년 기준)'도 민주화운동(democratize movement)이라는 개념과 성격을 전면 수용하지 않고 '투쟁'과 '피'를 연상하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박사학위 논문자 [[김영택(1936)|김영택]] 박사는 이렇게 이것을 이렇게 평가하였다. >'''자신들이 획책하고 반민족적, 반인륜적 국가폭력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무마하고 완화하려는 저의와 폄훼하려는 속셈을 깔고 민주화 운동을 끝까지 고집했던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김영택, 〈결론: '5·18 광주민중항쟁'의 성격과 역사적 의의〉 中 발췌, 《5월 18일 광주: 광주민중항쟁 그 원인과 전개과정》, 2010. 발췌원문은 여기 참고 http://blog.naver.com/superman2208/220138747018 ] 이와 비슷한 비판을 받는 건 [[동학농민운동]]이 있다. 이것 역시 동학농민항쟁이 타당하다는 지적을 많이 받는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