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광주일보 (문단 편집) == 역사 == [[6.25 전쟁]]이 발발하고 1950년 10월 7일에 전남시국수습협의회 선전부가 귀속 재산인 [[호남신문]] 사옥을 인수해 창간한 지역 기관지 <전남일보>[* 후술할 김남중 가문의 동명의 신문과 1988년에 창간한 [[전남일보]]와도 연관이 없다.]가 탄생했다. 1951년 봄에는 前 호남신문, 동광신문 출신의 간부들을 모아 발행인 고광표, 주필인 남봉 [[김남중(언론인)|김남중]], 편집국장 한규종, 편집부국장 고문석, 서두성 등으로 진용을 재편했다. 그러나 광주에 복귀한 [[이은상(시인)|이은상]]이 전라남도를 상대로 사옥명도소송을 제기하고 호남신문 사원들을 규합해 사내가 동요했다. 1951년 호남신문 사원들이 통행금지 시간에 전남일보 사옥을 강점하여 호남신문 속간호를 발행했다. 이리하여 사옥 명도소송에서 호남신문이 승소하자 도 기관지로서의 전남일보는 1951년 12월 1일부로 정간되어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이에 김남중 주필이 이은상에게 호남신문의 사옥과 시설을 넘겨주고 나와 [[부산광역시|부산]] 임시정부로부터 전남일보의 판권을 허가받아 '''1952년 2월 10일부터 민간지로 다시 태어나며 역사가 시작됐다.''' 전남일보는 1960년부터 조석간을 시도하였으나 1962년부터 석간으로 바뀌었다. 초기에는 충장로1가 대한통신 전남지사 건물에서 시작해 얼마 안 가 금남로5가 자리, 1955년 3월 6일 금남로2가 구 동구청자리 전일인서관, 1958년 충장로3가 하니문화관을 전전하다 1962년 금남로1가 1번지에 [[전일빌딩]]이 세워져 이곳에 정착했고, 1965년 주식회사로 법인화하여 1971년에는 [[전일방송]]도 개국했다. 같은 해에 1952년 2월 10일을 '속간'에서 '창간'으로 바꾸었다. 또 1978년에는 호남전기(훗날 로케트전기)까지 인수하였다. 1980년 11월 30일 [[언론통폐합]] 과정에서 전남매일신문[* 1960년 9월 26일에 창간했으며, [[5.18 민주화운동]] 당시 보도통제에 맞서 절필선언을 한 기자들이 이 신문사 소속이었다. 1989년에 창간한 [[전남매일]]과는 연관이 없다.]을 흡수해[* 이때 계열사였던 전일방송도 종방되었다.] 광주일보로 이름이 변경되었다. 합병 후에도 전남일보의 지령(紙齡)을 계승한다. 다만 구 전일과 전매 자산은 1980년에 세워진 신규법인으로 넘어갔으며, 기존 전남일보 법인은 '전일실업'이 됐다. 2003년부터 [[대주건설]]에 매각된 후 이듬해 HH레저로부터 골프장 사업을 넘겨받아 함평다이너스티컨트리클럽을 열었다. 2007년에는 장흥사업부를 '장흥다이너스티'로 분할시켰다. 2010년에 대주가 부도나자 2014년부터 회생절차에 들어갔고, 2015년 8월에 [[효성그룹]]이 행남사(행남자기)와 컨소시엄을 만들어 인수해 대주주가 되었다. 이에 따라 신문사업부가 동명의 신규법인으로 넘어가서 기존 법인은 골프장 사업부문만 남긴 채 이듬해 서진건설로 넘어가 '함평엘리체컨트리클럽'이 됐다. 또 2011년부터 [[채널A]]와 제휴했지만 얼마가지 않아 삭제됐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