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광주효덕초등학교 (문단 편집) === [[5.18 민주화운동]] 당시 === >(상략)5월 24일 01:30 11공수여단에 현주둔지인 주남마을에서 광주 송정리 비행장으로 이동하라는 전교사의 지시가 하달되자, 11공수여단이 같은 날 13:30경 주남마을을 출말하여 육로로 이동중, 그 선두가 광주-목포간 도로에 접한 광주 남구 진월동 소재 효덕국민학교 삼거리 부근에 이르렀을 무렵, 트럭을 타고 그곳에 와 있던 무장시위대 수명을 발견하고 총격전을 벌이자, 뒤따르던 병력들도 주변을 향해 일제히 총격을 가하여 별지 내란목적살인 피해자 및 피해상황일람표 순번 제7항 기재와 같이 효덕국민학교 뒤 놀이터에서 놀던 전재수, 부근 원제마을 저수지에서 놀던 방광범을 각 사망하게 하고(하략) >----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구속 사건/재판]]의 1심 판결문, 사건번호: [[서울중앙지방법원]] 95고합1228·95고합1238·95고합1320, 96고합12(병합,일부), 95고합1280(병합), 96고합12(일부,병합), 96고합38(병합), 96고합76(병합), 96고합95(병합), 96고합127(병합) [[1980년]] [[5월 24일]], 효덕국민학교에 재학 중이던 4학년 전재수 군과 인근 저수지에서 놀던 [[전남중학교]] 방광범 군이 저수지에서 놀다가 계엄군 총에 맞아 숨지는 일이 일어났다. 이후 [[망월묘지공원]]에 안장되어 있다가 [[1997년]] [[5월 6일]] [[국립민주묘지|국립 5.18 민주묘지]]로 이장되었으며, 1묘역 2-22에 안장되어 있다. 당시 총알을 피하다가 고무신이 벗겨졌는데, 아버지에게 새로 받은 고무신을 찾으러 되돌아 갔다가 계엄군의 총에 맞아 숨지고 말았다. [[https://518camp.org/archives/518_project/2-22|전재수 (효덕초등학교 4학년. 12세) 묘역번호 2-22]] [[1989년]]에 광주효덕초등학교에서 명예졸업하였다.[[http://www.gjreport.co.kr/bbs/board.php?bo_table=news&wr_id=47372|故 전재수 열사 2월의 민주유공자 선정]] [youtube(4g027g4j2Yw)] [[망월묘지공원]]에 있다가 [[국립민주묘지]]로 이장되었는데 사진이 없어 영정에 무궁화만 있었다가 [[2021년]] 사진이 발견되어 무덤에 사진이 생겼다. [[https://jnilbo.com/view/media/view?code=2021050517062817145|"이제라도 네 사진을 걸어주게 됐구나"]] 이 밖의 학생 피해자는 [[https://news.v.daum.net/v/20180516140840918|기사]] 참고. 전재수 군이 [[광주학살]]의 최연소 피해자로 잘 알려져 있지만 더 어린 피해자들도 있다. 공교롭게도 [[광주효덕초등학교]]가 소재한 [[송암동(광주)|송암동]] 야산에서 발견된 신원미상 사망자 중 하나인 '''4세''' 가량으로 추정되는 어린이 등. 현재 이 어린이는 무명열사 묘 5기(묘역번호 4-90, 92, 93, 96, 97) 중 4-97 묘역에 잠들어 있다. 이 아이는 [[1980년]] [[6월 7일]] [[광주광역시]] [[남구(광주광역시)|남구]] [[송암동(광주)|송암동]] 야산에서 여자 옷에 싸여 암매장된 채 발견되었다. 1000원짜리 지폐 한장과 함께 발견되었다. [[https://www.hani.co.kr/arti/area/honam/995312.html|한겨레신문의 기사]]에 의하면 현재 죽음과 련하여 여러 증언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행방불명자 중에서 찾으면 더 있다. '''10살''' 문미숙은 [[뇌성마비]] 장애인이었는데, 5월 21일 어머니 등에 업혀 학동 길을 걷던 중 총에 맞았고, 충격으로 실신한 어머니가 정신을 차려보니 딸의 몸은 어디에도 없었다고 한다(충격을 받은 어머니는 고작 1년 후 사망했다). '''5살''' 백근옥은 5월 23일 화정동 인근 도로에서 가족과 함께 있다가 가족들이 모조리 계엄군들에게 잡혀가는 봉변을 당하느라 아이를 챙길 겨를이 없었는데, 그 이후로 행방이 묘연하다. '''6살''' 박규현은 놀이터에 놀러 나갔다가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7살''' 이창현도 비슷한 이유로 나갔다가 실종되었는데, 이후 시신 사진이 발견되었다. 21일 역 앞에서 총에 맞아 사망했다는 점이 밝혀졌으나 현재까지도 그 시신이 어디로 갔는지는 찾지 못하고 있다. '''5살''' 박광진은 외할머니, 외삼촌 2명 등과 같이 [[몽탄면]]에서 광주를 거쳐 [[벽제]] 외가로 가는 중이었는데, 함께 간 '''일가족들 넷 모두가''' 행방불명되고 말았다. 모교인 광주효덕초등학교에서는 매해 추모 행사가 열리고 있다. [[http://sbnnews.co.kr/news/article.html?no=2888|광주시교육청, 5.18 청소년 희생자 추모사업 추진]], [[http://www.kwangju.co.kr/article.php?aid=1620223200720165006|어린이 날 열린 정패 제막식…모교 광주효덕초 학생들이 쓴 편지 유족에 전달]], [[http://www.honamtimes.com/news/articleView.html?idxno=177706|광주광역시 효덕초, 518민주화운동을 기억하라!]], [[http://www.gwangjuin.com/news/articleView.html?idxno=203139|광주효덕초, 5.18희생자 고 전재수 학생 추모]], [[http://m.mdilbo.com/detail/NezemK/646673|어린이날 돌아왔구나, '오월의 막둥이' 전재수]] 자세한 내용은 [[5.18 민주화운동/학살#s-7.4]] 참고. 또한 당시 학교 근처에 으슥한 곳에 커다란 분뇨 수거장(도꾸 구덩이)가 있었는데 여기에 시신들을 마구 집어넣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광주효덕초등학교는 광주에서 목포와 나주 등으로 빠져나가기 위한 길목에 있던 곳인데 계엄군은 이곳을 막고 광주를 봉쇄하고 있었기에 피살사고가 많았던 것.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