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광평성 (문단 편집) == 상세 == 얼마 안 되는 기록을 종합하면 궁예는 [[신라]]의 정치제도를 뼈대로 해서[* 비록 고구려를 계승한다고 자처하긴 했지만 이미 고구려가 멸망해 없어진 지 무려 240여년이 지나서 고구려의 정치제도를 완전히 고증해낼 만큼 기록이 남아있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으며, 이후 거란의 침입 때문에 많은 기록이 유실되어 완전히 남아있진 않지만 일단 남아있는 기록만 살펴봐도 궁예나 고려 초기의 통치제도는 후기 고구려와 공통점이 별로 없다.][* 실용적인 이유로 자국을 멸망시킨 지배국의 제도를 받아들이는 경우는 흔히 나타나는 현상이다. 한국사만 해도 3성6부제를 도입한거나 대한민국 헌법을 만들때 일본법도 포함해서 참조한것과 같은 일이 있었다.] 용어만 일부 고쳐 광평성을 설치했으며, 이는 백관을 총괄하는 관부였다. 즉 어떤 '신라의 제도'를 참고했는지가 관건인데, 이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정설은 없고 신라 [[화백회의]]를 계승한 [[호족(한국사)|호족]] 집단 간의 합의체 회의기구라는 설과, 신라의 집사부와 유사한 국왕 직속 정무기관이라는 설이 대립하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