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괴철 (문단 편집) == 평가 == [[한신]]의 모사로 지냈기 때문에 괴철의 평가는 한신의 행보와 연관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한신이 워낙 전략가로서 먼치킨이다보니 병법이나 전략에 대해 괴철이 귀띔해 줄 일은 없었다.[* [[한신]]이 병법과 계책에 대해 직접 물어보고 의논했던 사람은 [[이좌거]]였다.] 괴철이 한신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분야는 처세술, 정치, 외교 등이었으나, 여기서도 별로 도움이 된 적이 없다. 오히려 괴철은, 군공으로 한나라 최고 공신 반열에 오른 한신의 말년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괴철의 평가는 박할 수밖에 없다. 괴철의 진언 덕분에 애꿏은 사람들[* 역이기, 제왕 전광, 전횡과 전횡의 수족 등등]이 많이 죽었으므로 후대의 역사가들이 괴철의 얄팍한 계책으로 인해 무고한 사람들이 죽게 되었다고 괴철을 비난하거나 비평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괴철이야말로 '''당대 최고의 장군으로써 탄탄대로를 걷던 한신을 부추겨 트롤러의 비참한 말로'''로 진입시켰기 때문이다. 한신 이전에도 괜히 무신을 부추겨서 장초 세력을 분열시킨 전적이 있었다. 결국 무신은 진승과 함께 사이좋게 죽었다. 아무리 한신이 주변 눈치 안 보는 빵점짜리 처세술의 인물이라지만, 몇번 신뢰를 잃었을 뿐이지 유방과의 정면충돌로까지 번진 적은 없다. 게다가 대부분 전략적인 측면에서 이유가 있었기에 나중에 눈감아 줄 수도 있는 것들이었다. 다르게 생각하면 괴철을 만나기 전까지의 한신은 전쟁에서 만큼은 아주 충실한 신하였다. 그런데 괴철이 한신의 모사로 된 이후 역이기의 서신을 받고 공격을 중지하려는 한신을 부추겨 제나라를 돌격시키는데 일조하는 바람에 '''유방의 명으로 보낸''' [[역이기]]의 활약을 무의미하게 만듦과 동시에 죽게 만들었다. 제나라의 민심을 잃었으며 장량, 진평과 더불어 최측근 참모였던 역이기를 잃으면서 유방도 한신이 자신의 명을 어기는 행위를 하는 위험분자로 보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제나라 평정 이후 유방의 긴급 구원요청을 받고도 제나라 임시왕을 요구하며 왕 시켜달란 말까지 해버렸으니 유방 쪽에서 '이 새끼가 신하 주제에 임금에게 딜을 걸어? 이거 가만둬서는 안되겠다' 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래도 [[고제(전한)|한고조]] 입장에서는 이런 한신의 태도에 눈 감아주려고 했기에 전쟁 이후 제나라보다 영토가 넓고 항우가 다스렸던 강국 초나라의 왕으로 임명시켰다. 이는 [[한신]]이 아니었으면 [[초한전쟁]]에서 승리를 잡기도 힘들었고, 관중대전부터 시작해 한신의 수많은 공적이 있던 것과 한신을 죄를 묻기에도 미안하고 설령 그랬다간 팽월을 비롯한 제후들의 불안심리를 자극할 수 있었기 때문도 있었다. 더욱이 유방은 한신이 정말 반란을 일으킬 사람인지도 불확실했기 때문에 회음후로 강등시킬때도 반란을 일으키진 않겠지라는 마음이 있었기에 죽일 생각까지는 없었다. 오히려 전후 재상 소하를 비롯한 여러 신하들이 한신의 행동을 보고 다 숙청을 청하는데도 유방은 유야무야 흘려넘기고 있었다. 그러나 유방이 반란군을 잡으러 떠난 사이에 결국 여후의 손에 의해 숙청당하고 만다. 한신이 살아 있었다면 어떤 행보를 걸었을지는 알 수 없지만, 결과적으로 한신은 [[한삼걸]] 중에서 가장 안 좋은 말로를 걷게 된 것이다. 한신의 결정적 실수가 괴철을 참모로 뒀다는 것에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으니, 괴철의 민폐 정도를 알 수가 있다. 물론 그렇다 하더라도 '''그 말을 듣고 진짜 공격해버리고 "왕 시켜주쇼."하고 뻗댄건 한신이기에''' 무조건 모든게 괴철 때문이라고 할 순 없다.(...) 일단 괴철을 위해 약간의 변명을 해주자면 괴철의 이같은 조언은 유방의 이성왕 숙청을 미리 예견한 것이라고도 볼수 있다.현대고 고대고 [[토사구팽]]은 정말 흔한 일이였고 특히나 한신은 공을 많이 세웠으니 견제 대상인건 확실했다.그리고 유방은 별다른 증거도 없던 [[팽월]]을 일족을 몰살시키는것도 모잘라 본인의 몸뚱아리로 젓갈을 담궈 제후들에게 보내는 충공깽 스러운 모습을 보였고 말년에는 노망이라도 들었는지 평생을 본인과 함께하던 [[번쾌]]조차 죽이려는 행보를 보였다.이러한 유방의 행동에 질린 [[노관]]과 [[영포]]는 진짜로 반란을 일으켰다.거기다 여후는 아예 공신들을 죄다 숙청하려는 시도까지 했고 결정적으로 유방이 살려주려던 한신을 여후가 나서서 기어이 죽여버렸던 만큼 한신이 암만 얌전히 군다고 해도 언제까지 안전하다는 보장은 없었다.게다가 결과적으론 한신은 반란을 일으킬 생각은 없었는데 잡혀 죽었으니 괴철의 말이 아예 틀린말은 아니였다. 사마천은 사기에서 제나라를 멸망하게 만든 괴철의 행적을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 >甚矣蒯通之謀,亂齊驕淮陰,其卒亡此兩人!蒯通者,善為長短說,論戰國之權變,為八十一首。通善齊人安期生,安期生嘗干項羽,項羽不能用其筴。已而項羽欲封此兩人,兩人終不肯受,亡去。田橫之高節,賓客慕義而從橫死,豈非至賢!余因而列焉。不無善畫者,莫能圖,何哉 > >심하다, 괴통(蒯通)의 계략이여, 제나라를 어지럽히고 회음후(淮陰侯)를 교만하게 만들어 끝내 전횡(田橫)[* 역이기를 죽인 제왕 전광의 삼촌으로, 전광이 역이기를 튀김으로 만들 때 같이 있었다. 이후 숨어살다가 유방이 천하를 통일한 뒤 장안으로 초청하는데, 역이기의 동생인 [[역상]]에게 저 사람은 내가 부른 손님이니 복수한답시고 난리치면 가만두지 않을 것이라고 엄포를 놨다. 이 소식을 들은 전횡은 장안으로 향하던 중 내가 죽인 사람의 동생을 미안해서 어떻게 보겠냐고 하며 자살했고 같이 숨어 살던 그의 식객 500명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과 한신(韓信) 두 사람을 죽게했으니! 괴통이란 자는 종횡가의 장단설에 능숙하여 전국시대의 권모술수를 논한 글을 81편으로 만들었다. 괴통은 제나라 사람 안기생(安期生)과 친했는데 안기생은 일찍이 항우에게 벼슬자리를 얻기 바랐지만 항우는 그의 계책을 쓰지 않았다. 얼마 뒤 항우가 이 두 사람을 봉하려고 했지만 두 사람은 끝내 받지 않고 달아났다. 전횡은 고상한 절개를 가지고 있었고, 그 빈객들이 그의 의리를 흠모해 따라 죽은 것은 어찌 더할 수 없는 현명함이 아니겠는가! 나는 이런 까닭에 그를 열전에 넣었다. 당시에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이 없지 않았을 텐데, 그들의 용모와 업적을 묘사하지 않았으니 어찌 된 까닭인가? >----- >사기 전담열전 마지막 부분 반고는 한서에서 한술 더 떠 역이기까지 포함해 세 사람을 망쳤다며 더 신랄한 비판을 남겼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