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교황/역사 (문단 편집) == 교황권의 쇠퇴 == * 하지만 결국 교황이 주도하여 전 서유럽을 전쟁으로 끌어들였으나 결국 실패로 끝난 [[십자군 전쟁]]의[* 여담으로 이 십자군 전쟁으로 서유럽 보편 교회와 동방 정교회의 관계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된다. 20세기 중반 이후 적극적으로 화해를 하고 있으나, 여전히 러시아와 그리스에는 특히 제4차 십자군 전쟁 당시 십자군이 저지른 만행에 치를 떨며 화해에 반대하는 사제들과 주교들과 신학자들이 있을 정도.] 실패는 교황에게 서유럽 각국에서의 정치·군사·경제적 압박과 그 위상의 실추로 돌아오게 되었다. * 그리고 이후 서유럽을 덮친 [[흑사병]](1346 ~ 1353)의 창궐로 유럽의 인구가 크게 줄어들며 봉건사회가 무너지게 됐다. 이는 강력한 교황권을 지지하던 체제가 무너졌다는 의미이다. 더불어 흑사병은 교회의 무능과 성직 사회 전반에 퍼진 부패와 타락을 생생하게 드러내며 교황의 정신적, 종교적 위상을 크게 실추시켰다. * 또한 이 시기 십자군 전쟁 등으로 말미암아 동로마 제국과 이슬람 세계로부터 전례된 새로운 학문과 문물들[* 대표적으로 아리스토텔레스를 비롯한 고대 그리스 철학과 정교회 신학, 연금술, 수학, 기하학, 천문학, 지도, 동아시아로부터 전례된 종이와 화약, 나침반, 활자 등]은 교황권에 대한 본질적 의문을 제기하게 만들었다. 십자군과 흑사병 판데믹 이후인 [[르네상스]] 시대에는 강력한 군주가 여차하면 교황을 갈아엎을 수도 있는 수준이 된다. [[군주론]]에서 [[체사레 보르자]]의 실수로 '''[[율리오 2세|자신에게 해를 입었던 추기경]]이 교황이 되는 것을 막지 않은 것'''을 꼽고 있는 것으로 보아 교황 선출에 권력자들의 입김이 미치는 것도 공공연한 일이었던 모양이다. 게다가 그 유명한 메디치 가문도 교황을 정치적 의미에서 종속시켰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