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구경백 (문단 편집) == 프런트 경력 == [[배명중학교]]와 [[배명고등학교 야구부|배명고등학교]] 재학 시절까지 내야수(2루수)로 뛴 야구선수였지만 고교 3학년 때 늑막염을 앓으면서 선수로서의 길이 막혔다. 졸업 후 잠시 허송세월하면서도 야구를 잊지 못해 음료수를 사들고 모교 야구부 경기를 따라다녔다고 한다. 그러다 국가유공자인 아버지 덕에 [[OB맥주]]의 일반 사원으로 입사해[* 구경백이 직접 쓴 책에 보면 "OB맥주에 다닐 때 바가지로 공장 안에 있는 맥주를 마음껏 퍼마셨다"고 술회했는데 훗날 그가 암을 얻은 원인 중에 하나도 과음이었다고 한다.] 사내 사회인 야구팀에 들어가서 팀의 핵심 선수로 활동했다. 그러다가 1982년 [[한국프로야구]] 출범과 함께 창단한 [[OB 베어스]]의 매니저로 일하게 됐다.[* 보직이 1군 매니저이기도 했고 당시 직급은 주무였다. [[1982년 한국시리즈|원년 한국시리즈]]를 치를때 이광환 코치와 윤동균, 김우열 선수등이 경기 끝나고 회식할때마다 물주 역할도 했었는데 3차전부터 6차전까지 내리 4연승을 거두는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었다.] 1군 매니저로 시작해 운영차장, 홍보팀장, 스카우트팀장[* 이 시기에 [[개성고 야구부|부산상고]]의 무명 좌투수 [[이혜천]]을 과감하게 드래프트 2차 1순위로 픽해 OB~두산의 좌완 불펜 잔혹사에 종지부를 찍었다.] 등 OB 베어스 프런트 각 분야를 두루 거쳤다. 그러나 1997년 [[1997년 외환 위기|외환 위기]]의 영향으로 구단 프런트에 대한 구조조정이 이뤄지면서 OB에서 퇴사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