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구리(바둑기사) (문단 편집) == [[이세돌]]과의 관계 == 구리와 [[이세돌]]은 오래된 [[바둑]] 역사 속에서도 전례가 없는 [[라이벌]]이었다. 이전 사례로는 20세기 희대의 라이벌이라고 할 수 있는 [[사카타 에이오]]와 [[후지사와 히데유키]][* 사카다 九단이 53승 33패 1무 우세.], [[조훈현]]과 [[서봉수]][* 조훈현 九단이 251승 120패 우세.]가 있긴 하지만, 이 두 번의 라이벌전은 사실상 한 쪽의 일방적인 승리였다면 구리와 이세돌은 10여년의 세월 동안 치열한 일진일퇴의 공방을 거듭했다. 두 기사가 최정상권에서 물러난 지금 기준으로 보자면 번기 승부와 [[Milly 몽백합 이세돌-구리 10번기]]에서 더 좋은 모습을 보여준 이세돌의 우위가 일반적인 평가지만, 역사상 바둑계에서 동시대 1인자를 상대로 이렇게까지 분전한 기사는 2020년대 기준 구리가 유일했다. 또한 구리와 이세돌은 단순히 우연으로 치부하기 힘든 여러가지 기록들을 갖고 있는데, * 두 기사는 2004년 중국갑조리그 9회전에서 처음 대결했고 당시에는 '''구리가 흑으로 5.5집승'''을 거두었는데, 2018년 7월 16일에 벌어진 2018 중국갑조리그 10회전에서는 '''이세돌이 흑으로 5.5집승'''을 거두었다. '''이 대결은 두 기사간의 50번째 대결이었다.''' * '''이세돌은 1983년 3월 2일 생인데, 구리는 1983년 2월 3일 생이다.''' 실제 둘은 술자리도 가지는 [[친구]]기도 하다. * 이세돌이 2009년에 휴직에 들어가자 그전까지 세계대회를 쓸어담던 구리도 난조를 보였고 만년 2인자일 것 같았던 [[쿵제]]가 2010년 하반기까지 세계 1인자로 군림했다. 그런데 이세돌이 2010년 1월 복직 후 24연승을 달리며 비씨카드배를 우승하더니, 구리도 2010년 말에 삼성화재배를 우승하며 화려하게 부활했다. 이렇게 서로 치고받는 싸움이 계속되고 10번기에서 지기도 했지만, 구리는 짧은 원망과 오랜 사랑을 느꼈다면서 이세돌에 대한 존중과 애정을 표하기도 했다. 2019년 이세돌이 한국기원과의 갈등 끝에 프로 바둑계 [[은퇴]]를 선언하자, 구리는 웨이보에 '자신이 좇던 목표였으며 나를 격려해주고 나아가게 해줘서 고마웠다',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4국|'신의 한 수로 인류의 지혜와 보물을 지켜주었다.']][* 이 대국에서 구리는 해설 도중에 승리의 시초가 된 78수를 두고 '신의 한 수'라고 평하기도 했었다.], '지난날과 미래에 건배를 보내며 더욱 유일무이한 이세돌로 살아가길 바란다.'란 글을 남기기도 했다.[[https://www.yna.co.kr/view/AKR20191120128900007|#]] 이에 이세돌도 SBS 주영진 뉴스브리핑 인터뷰 도중 관련 언급이 나오자 이미 글을 봤다며 고마움을 표했다. 또 라이벌이자 친구로 지냈지만 사실 친구의 감정이 더 컸다며 자신은 은퇴하지만 구리는 바둑계에 좀 더 남아서 유종의 미를 거두길 바란다는 식의 메시지를 보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