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구성주의 (문단 편집) == [[과학철학]]에서의 구성주의 == > 관찰에 대한 언어와 기호가 무시 될 때, 물리학은 단순한 감각과 수준의 실험에 기초를 둔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면 물리학은 (단지) 감각의 단순한 반복적이고 단조로운 연속과 학교에서 행해지는 실험으로 기술된다. 그러나 물리학은 세계를 향한 단순한 감각의 표출만이 아니다. 그것은 또한 세계에 대해 사고하는 방법이며 개념을 형성하는 방법이다. 새로운 패러다임을 발견하는 사람은 다른 모든 정상 관찰자가 발견하고 기록하는 것을 발견하고 기록하는 사람이 아니라 익숙한 사물들로부터 지금까지 아무도 발견하지 못했던 것을 발견해 내는 사람이다. > -러셀 노우드 핸슨<과학적 발견의 패턴> 중에서- >세계가 뉴턴 역학으로 기술될 수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그 세계에 관해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것은 우리에게 무언가를 말하고 있는데, 그것은 '''이 세계가 실제로 어떤 특정한 방식으로 기술될 수 있다는 것'''이다. > -비트겐슈타인- 흔히 과학철학에서 구성주의(Constructivism)는 전통적으로 과학적 [[실재론]](Realism)과 대치되는 주장으로, 반실재론(Anti-realism)의 한 갈래로 여겨지고는 한다.[* 후술하지만 정확한 대비는 아니다.] 과학적 실재론이 과학 이론이 세계의 참된 모습 자체를 그대로 드러낸다고 하는 주장이라면, 구성주의는 과학 이론이란 결국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며 인간이 만들어낸 어떤 도식과 틀로써 '보편적이며 참된 과학적 진리' 자체를 나타내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주장한다. 사실 대부분의 구성주의적 과학자들은 세간의 오해와는 달리 과학법칙의 존재 그 자체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입장인 경우가 많다. 구성주의자들의 입장을 단순히 정리하자면 이렇다. 인간인 우리는 '정확한 실재'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과학이론이라는 것은 인간이 만들어낸 주관적인 인과관계를 인식하는 어떤 방식으로 써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불변하는 정확한 실재가 존재하는지 에 대해서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우리는 겉으로 보기에 드러나는 과학활동에 대해서는 말할 수 있다. 그리고 과학활동은 서로 다른 과학자들 사이에서의 논쟁과 토론 그리고 적당한 선의 합의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과학은 현실적인 실재 그 자체 라기보다는 의식에 의해 만들어진 이론적 틀과 현실에 대해 "사고하는 방식"이자 "특정한 방식들로 이루어진 기술들"이다. 즉, 외부에 객관적인 실재가 있다고 하더라도(이것에 대해 부정적인 경우는 거의 없다.) 과학 "이론"은 과학자들이 만들어내는 이론적 틀과 인식방식에 따라 서로 다른 방식으로 구성될 수 있다는 것이다. 과학적 구성주의에서 보는 과학활동이란 구성주의심리학에서 인간의 심리작용을 보는 관점과 비슷한데, 예시를 하나 들자면 현대에는 한 물체가 지나간 거리를 시간으로 나누는 "속도"라는 개념을 당연하게 여기지만 중세시대만 해도 '시간'과 '공간'이라는 것이 서로 다른 속성 이라고 여겨졌기에 그중 하나를 다른 하나로 '나눈다' 는 것을 부자연스럽고 의미 없는 일로 여기곤 했다. 이렇게 현대의 사람들은 갈릴레이라는 학자가 제시한 '속도'라는 개념을 통해 그전의 중세 사람들은 생각하지 못했던 시간과 공간을 연결짓는 방식으로 세상을 다시 보게 되었다. 구성주의적 학자들이 바라보는 과학활동이란 이미 주어져 있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개념들을 연결짓고 연관관계를 생각해내면서 만들어져가는 극히 창의적이고 독창적이며 인간적인 과정이라는 것이다. 구성주의적 관점을 취한 대표적인 철학자에는 [[데이비드 흄|흄]]과 [[토머스 쿤|쿤]], 그리고 후기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비트겐슈타인]]이 있다. 흄은 철학사에서 구성주의를 주장한 최초의 예라고 할 수 있는데, 그는 인과관계를 부정했으며 자연법칙이 인간의 습관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라고 보았다. 이러한 흄의 견해를 [[임마누엘 칸트|칸트]]가 계승한 것이 이른바 '인식론적 관념론'이라 불리는 근대철학의 종합이었다. 패러다임설을 제시한 토머스 쿤 같은 경우, 비록 본인은 구성주의적 입장에 반감을 표했지만 그의 패러다임 이론이 현대적 구성주의의 단초가 된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렵다. 후기 비트겐슈타인은 전기와는 달리 언어란 세계에 대한 정확한 기술이 아니라 "물!", "저쪽!", "와!", "도와줘!" 같이 사용맥락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지는 언어표현들에 주목한다. 이와 관련하여 비트겐슈타인은 "낱말의 의미란 언어 안에서의 그 사용이다"라고 설명하며 고정된 실체로서의 언어를 부인한다. 그는 전기의 진리대응설을 비판하고 언어는 의미를 전달하는 활동이라 주장하며 언어의 화용론적 측면을 부각시킨다고 볼 수 있다. 그에게 언어란 일종의 게임 이라고 볼수 있는데 체스에서의 '왕'은 현실에서의 어떤 '왕' 이라는 개념의 사용과 일치하기 때문이 아니라 체스게임 내에서의 이러저러한 규칙에 따라 이러저러한 방식으로 움직이는 것으로서 의미가 있다. 이러한 말의 움직임은 현실과 유사하지만 결코 일치하지도 않고 대응되지도 않는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