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구원파 (문단 편집) === 형성 === [[영국]]의 [[선교사]] 딕 욕(덕인영, Dick York)이 1960년대 자신의 구원관을 가지고 한국에 와서 선교활동을 하면서 형성되었다. 그런데 딕 욕은 '''정식 교단에서 안수를 받은 기록은 없고, 말 그대로 개인 신앙을 설파'''하러 온 자로 알려져 있다. 딕 욕, 케이스 글라스(길기수, Kees Glas), 데릭 얼 등은 한국에 와서 선교학교를 만들었고 1기생이 바로 [[유병언]], [[박옥수]]였다. 당시 대구 칠성교회 시무였던 [[권신찬]] 목사는 청강생으로 함께 했다. 권신찬-유병언계 구원파(기독교복음침례회)를 만든 권신찬은 51년 11월 장로교 목사 안수를 받지만 62년 12월에 제명당한다. 한국기독교이단문제연구소 심영식 이사장에 따르면 "다른 외국인 선교사로부터 침례를 받고 장로교 교리와 다른 주장을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권신찬 목사는 구원을 받은 후 성경에 나온 세례가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산다는 뜻인 침례라는 걸 알고 당시 물에 완전히 잠기는 침례를 받게 되는데 당시 장로교회의 헌법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면직되었다고 한다. [[http://www.amen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3603|#]] 이때의 외국인 선교사가 바로 [[네덜란드]] 출신 독립 선교사 케이스 글라스와 영국 선교사 딕 욕이다. 박옥수는 딕 욕에게 안수를 받고 목사가 되었다고 주장하나 나중에 딕 욕 본인은 안수를 준 사실을 부인하였다. [[http://www.hdjongkyo.co.kr/news/view.html?skey=%B5%F1+%BF%E5&x=0&y=0§ion=33&category=42272&no=17309|현대종교 관련 기사]]. 또한 길기수 선교사 측의 단체 역시 그들과의 관계를 부정하고 이름을 도용당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권신찬 목사와 유병언 전 회장은 1960년대 초 외국인 독립 선교사들이 운영하던 대구 성경학교에서 성경을 공부했고, 이후 1963년부터는 대구 지역을 중심으로 독자적인 전도 활동을 펼쳤다.이들은 평신도운동으로 시작해 '''한국평신도복음선교회'''라는 이름으로 활동하였고 1981년 12월에 교단 설립이 필요하다는 의견 아래 '''기독교복음침례회'''로 교단의 형태가 갖춰지게 되었다 .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