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구자라트 (문단 편집) == 상세 == 구자라트 주의 인구는 2017년 기준 67,600,992명인데, 인도에서 9위이다. 인도의 '''일개 주 하나'''가 남한의 인구를 뛰어넘는다. 인구밀도는 345명/㎢으로, [[경상남도]]보다 약간 높다. [[2015년]] 11월 15일 기준 주지사는 옴 프라카시 코흘리다. 종교는 [[힌두교]]가 89.09%, [[이슬람]]이 9.06%, [[자이나교]]가 1.03%, [[기독교]]가 0.5%, [[시크교]]가 0.19%, [[불교]]가 0.07%, 기타가 0.05%이다. 전체적으로 힌두교가 대다수라고는 하지만 무슬림 비중도 상당수로 충분히 많다. 말이 10%지 인도 인구를 고려해보면 이 정도는 넘쳐흐르는 거다.[* 똑같이 무슬림이 많은 곳은 행정수도 [[델리]]와 최대도시 [[뭄바이]] 등이다. 델리는 과거 [[무굴 제국]]의 중심지였고 그 전부터 델리 술탄 왕조 등 [[튀르크]]계 이슬람 왕조들이 많았다. 뭄바이의 경우 무슬림이 상당수인 [[마하라슈트라]]주로 이곳은 과거 마라타 동맹이 있던 곳이라 힌두교 극우주의도 기승을 부려 힌두-무슬림 간 대립이 심하다. [[펀자브]]에서 힌두-시크교 간 갈등과 똑같다.] 특히 북부 [[타르 사막]] 일대에는 무슬림이 더 많은 지역들도 있으며 베지테리언 레스토랑이 대부분인 이 주에서 유일하게 주도 아마다바드에서는 논베지 [[할랄 푸드]] 무슬림 식당들을 찾아볼 수 있다. 특히 [[모스크]] 근처에 가면 논베지 음식점들이 즐비하기에 베지테리언 취향이 아닐 경우 모스크 근처를 잘 찾아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러한 논베지 레스토랑들은 [[케밥]]이나 탄두리 치킨 등 주로 [[양고기]], [[닭고기]]를 이용한 음식들을 파는데 특히 [[치킨]] 요리가 많다. 이슬람은 [[돼지고기]] 식용을 엄금하기 때문이다.[* [[쇠고기]]는 이슬람 교리 상 할랄이지만 인도 인구 80%를 차지하는 힌두교도들 눈치를 보느라 못 팔기 일쑤다. 물론 알음알음 몰래 힌두교도도 쇠고기를 먹기도 하고 해서 없는 건 아니다.] 북부는 타르 사막이지만, 남쪽은 기름진 평야여서, [[쌀]], [[면(섬유)|면]], [[보리]], [[담배]]가 많이 난다. 그리고 남부 하이데라바드 일대와 함께 인도의 제조업 중심지 중 하나이기도 하다. [[문맹률]]은 19.8%이다.[* [[2011년]] 기준.] 인도의 국부이자 성자 [[모한다스 카람찬드 간디]]가 출생한 곳이 바로 이 곳이다. 현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도 이곳 출신으로 주 총리를 역임했다. 현재는 [[힌두교]] 극단주의가 부상하는 중심지라는 우려를 받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미 [[1969년]]과 [[1985년]], [[2002년]] 세 차례의 힌두 극우주의자들의 폭동으로 수백에서 수천 명이 죽은 바가 있고, [[2006년]]에도 바도다라에서 소규모의 폭동이 일어나 8명이 죽고 40여 명이 다친 바가 있는 곳이다. 거기에 14% 이상의 [[이슬람교]] 세력도 상당수가 있고 인도의 인구를 고려할 때 수가 어마어마해 무시할 수 없는지라 힌두교도와 무슬림 간의 분쟁이 심심치 않게 벌어지는 곳이기도 하다. 정확히는 이슬람은 북부 타르 사막 근처, 힌두교는 남부에 많이 있으며 때문에 남부 구자라트에서는 거의가 베지테리언 레스토랑들이다. 남부 구자라트는 힌두교도들 사이에 일종의 성지화된 곳이기 때문에 절대로 식당에서 아무런 고기를 팔지 않는다. 주변에 단층이 있어 지진이 많이 일어나는 지역이다. [[2001년]] 1월에는 이 지역을 직격한 구자라트 대지진의 피해로 진앙지였다. 이 지진으로 2만명이 사망하고 16만 6천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도시 99%가 완파되다시피 한 아마다바드 근교 부지 시 등의 몇몇 도시는 아예 재건을 포기(...)하고 버렸다. 이때 한국에서 [[중앙119구조본부]]에서 국제구조대를 파견했고, 똑같이 [[1999년 이즈미트 대지진]]으로 최대도시 [[이스탄불]]의 50%가 완파됐던 [[터키]]에서도 민간단체와 이스탄불 소방본부 구조대 등이 파견되었으며 [[홍콩 소방처]]도 지원에 나섰다. 물론 식민 종주국 [[영국]]도 소방대원들과 장비, 물자 등을 지원했다. 인도의 소방인력이나 장비가 열악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워낙 규모가 큰 지진이라 구자라트 주 전체의 소방대원들은 물론 인도군까지 동원되어도 구조작업과 피해복구가 불가능할 정도였다.[* 현재도 인도 소방당국은 구조장비 등이 현대화되지 않은 실정으로 소방여건이 한국의 [[1980년대]] 수준으로 열악한 실정이다. [[2001년]] 당시에는 말이 필요없이 더욱 열악해 삽이나 곡괭이 등을 동원해 일일이 손으로 땅을 파야 할 지경이었다. 한국 중앙119 구조대의 경우 열 감지기와 각종 중장비 등을 동원해 단 하루만에 인도 구조대원들이 며칠이 걸리던 구조작업을 해내기도 했다.] 이 지진으로 전술했듯 부지 시 등의 몇 개의 피해가 심한 도시들은 그냥 행정구역 자체가 사라져 버렸고, 아마다바드 시 역시 그때의 상흔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복구가 되지 않은 곳들이 아직까지 즐비하다. [[1999년]]에 [[코자엘리 지진]]을 겪은 [[터키]] 서부지역의 이즈미트 등도 아직까지 복구 안된 곳들이 꽤 있는데 인도는 비록 [[남아시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라고는 하지만 세계적으로는 아직까지 개발도상국에 불과하고 터키에 비해 경제력이 떨어지는 나라인 건 사실인지라 도시를 버릴 수밖에 없었다. 대지진 자체는 역사적으로도 몇 차례 발생했는데, 전근대 지진 중 가장 유명한 것은 [[1819년]]에 발생한 지진이다. 이 지진은 M7.7에서 최대 '''M8.2'''에 달한 실로 어마어마한 지진이었는데, 그 여진이 무려 '''30년'''동안이나 지속된 것으로 구자라트의 역사에서 손꼽히게 유명한 자연재해였다. 이 대지진은 아예 '''구자라트 일대의 지형 자체를 송두리째 바꿔 버렸다.''' 북부를 융기시켜 본래 야트막한 바다였던 란 쿠츠(Rann of Kutch)의 지대를 높이고 가장 크게 융기한 지역은 아예 이 지역으로 흘러들던 강물을 모조리 차단해 란 쿠츠를 오늘날의 [[소금 사막]]으로 탈바꿈시켰다. 오늘날의 란 쿠츠는 [[우기]]에만 잠깐 대지진 이전의 지형과 같이 얕은 바다가 된다. 우기에 습지가 돼 물에 잠기는 지형은 인도에서는 이곳이 유일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