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구제궁 (문단 편집) === 영명사 === [include(틀:일제강점기 불교 31본산)] 永明寺 [[파일:평남평양 칠성문에서 본 영명사 전경.jpg|width=50%]] [[일제강점기]] [[칠성문]]에서 본 영명사 전경 [[평양성]] 북성에 위치했으며 고구려 [[광개토대왕]]이 지은 아홉 사찰 중 하나. 평양성과는 [[칠성문]](七星門)을 두고 연결 돼 있으며 구제궁과 연결 돼 있었다. 영명사 부지에 후 구제궁이 세워진 것으로 보이나 구제궁 위에 영명사가 세워졌다고도 한다. [[삼국사기]] 기록엔 [[광개토대왕]] 재위 2년, [[392년]]에 처음 세웠다고 한다. [[고려]]의 여러 [[임금]]들이 [[대동강]]에서 배를 타고 영명사를 방문했다. [[예종(고려)|예종]]은 재위 4년, 1109년에 [[윤관]]의 [[여진정벌]] 성공을 기원하면서 문두루(文豆婁) 도량을 열었다 . 문두루는 불교 중 밀교 계통의 의식으로 [[신라]]가 [[나당전쟁]]을 벌일 때 문두루 도량을벌여 당 해군을 모두 침몰시켰다는 전설이 있다. [[조선시대]]엔 [[교종]] 계열 [[절(불교)|사찰]]이었으며 득월루(得月樓), [[대웅전]], 법당, 오층[[석탑]] 등이 있었다. 그러다 [[청일전쟁]]으로 크게 무너지고 다시 지었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도 살아남았지만, 결국 [[한국전쟁]] 당시 미군의 평양 폭격으로 소실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