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구진 (문단 편집) == 상세 == [[장수왕]] 이래 [[고구려]]가 차지하고 있던 [[한반도]] [[중부]]를[* [[죽령]] 이북, 고현(高峴) 이내의 10군.] 551년 공격할 때[* [[백제]]는 한강 하류를, 신라는 한강 상류로 치고 올라가 차지하기로 약속했었다. 그러나 이후 한강 상하류 모두 신라가 차지해 [[성왕(백제)|성왕]]이 분노해 [[관산성 전투]]로 이어진다.] 참전한 9명의 장수 중 한 명이다.[* [[대각간]] 구진, [[각간]] 비태(比台), [[잡찬]] [[탐지]](耽知)ㆍ[[비서]](非西), [[파진찬]] [[거칠부]]ㆍ서력부(西力夫)ㆍ[[김세종|노부]](奴夫), [[대아찬]] [[비차부]], [[아찬]] [[미진부]]] 이 때 점령한 10군은 한강 상류지역 [[강원도]] 및 [[함경도]] 남부 일대로 본다. 《[[삼국사기]]》에선 그의 지위가 대각찬(大角飡)으로 나오는데, '찬'과 '간(干)'이 대부분 대응하며, 이후 기록에서 [[대각간]]이었던 [[김유신]]의 관등을 대각찬이라고 쓴 부분도 있으므로 대각찬=대각간이다. 매우 높은 고위 귀족임을 알 수 있지만 기록이 소략해 추가적인 생애 행적은 알기 어렵다. 10년 정도 뒤 진흥왕이 옛 [[가야]] 땅이던 [[창녕]] 지역을 평정한 후, 561년에 세운 [[창녕 척경비]]에도 '굴진지(屈珎智) 대일벌간(大一伐干)'이라는 이름이 나오는데, [[이벌찬]]-이벌간-각간으로 관등도 같고 굴진지라는 이름의 음도 구진과 비슷해 동일인물로 여겨진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