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구창모(가수) (문단 편집) == 송골매, 그리고 배철수 == [[배철수]]와는 1978년 [[TBC 젊은이의 가요제|TBC 해변가요제]]에서 처음 만나게 되었다고 한다. 방에서 구창모가 연습을 하고 있었는데, [[활주로]][* [[한국항공대학교]]의 밴드]로 출전한 배철수[* 드러머를 맡으면서 보컬까지 겸했다고 한다.]가 지나가다가 우연히 이를 듣고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엄청난 미성의 목소리여서 잊을 수가 없었다고. 이후 배철수는 그를 기억하고 있다가 송골매 2집을 준비하던 시기 그를 영입했다고. 그리고 그 뒤에는... [youtube(9g3GvUonI1M)] 정말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게 된다. '[[어쩌다 마주친 그대]]'[* 리프의 명곡으로 손꼽히며, 사실상 1980년대를 대표하는 최대 히트곡이다.], '모두 다 사랑하리', '다시 한 번' 같은 곡들이 10대와 20대 사이에서 크게 히트를 하면서, 국민 밴드와 인기 아이돌로 거듭나게 된다. [[조용필]]이 그야말로 압도적이고 독보적인 존재이던 1980년대 시절에, 조용필 다음가는 인기는 누구냐고 물으면 누구나 공히 '송골매'라고 대답할 정도로 폭발적인 사랑을 받았다. 배철수의 독특한 캐릭터와 담백한 창법, 구창모의 수려한 외모와 부드러운 미성 역시 크게 화제가 되었다. 인기가 얼마나 엄청났던지 이들을 주연으로 한 영화가 무려 세 편이나 제작되었다. 80년대 당시 이런 영화가 제작된 가수들이 [[조용필]], [[전영록]], [[이상은(가수)|이상은]] 같은 가수들이었던 걸 생각하면 얼마나 인기가 많았는지 알 수 있다. 예능 프로, 광고까지 발을 뻗쳤을 정도로 인기가 대단해서 당시 음반사 사장이 보너스로 거액의 돈을 주기도 했다고. 이 인기는 구창모가 마지막으로 참여한 송골매 4집까지 계속된다. 하지만 높은 인기에 구창모는 솔로 활동에 대한 꿈을 꾸기 시작했다. 그런데 마침 다른 멤버들과 음악적으로 마찰도 잦아지게 되고 많은 스케줄에 목상태도 안좋아지기 시작한다. 결국 갈등이 심화되어 1985년 송골매를 탈퇴하고 솔로로 데뷔해 [[희나리(노래)|희나리]]로 크게 인기를 얻는다. 배철수는 송골매가 [[롤링 스톤즈]], [[이글스(밴드)|이글스]] 같이 오래가는 밴드가 되길 원했기에 이를 매우 안타까워 했다고. 게다가 구창모는 솔로로 잘나가는데 비해 송골매는 이전보다 흥행이 떨어져 상황이 좀 껄끄러워지기도 했다. 물론, 리즈 시절이었던 1981~1985년에 비해 그렇다는 거지 인기도는 여전히 나쁘지 않았다. 후기에 모여라 같은 곡이 히트를 하기도 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좀 서먹서먹했으나 이후 화해해 현재까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구창모가 다시 방송 복귀를 하게 된 계기도 배철수 덕분이라고 한다. 또 더 늦기 전에 송골매 기념 공연이라도 하는 게 소원이라고 밝히기도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