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구천 (문단 편집) == 평가 == [[한자문화권]]에서는 고난과 [[복수]]의 상징 같은 인물이다. [[군주]]가 고난을 겪을 때 [[신하]]들이 미구천을 언급하면서 위로하는 것은 거의 클리셰 수준.[* 좀 다른 사례로 인조 시기에는 와신상담이 12건 등장하여 숙종 다음으로 많은데 이 시기는 명청교체기 시기에 두 번의 호란이 터진 시기다. 헌데 인조의 경우 결국 와신상담에 실패했고 가능하지도 않아서인지 인조 15년에 직접 인조가 문서에 (와)신(상)담이란 말 쓰지 말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치가 워낙 혹독하고 잔인했으며, 말년에는 그 자신이 고난과 복수를 함께한 명신들을 신뢰하지 못해 숙청해버렸기 때문에 비판을 받는다. 게다가 [[천하통일]]을 한 것도 아니고 단순히 오나라 하나만을 멸망시켰을 뿐인데 성급하게 유능한 대신들의 토사구팽에 들어섰다는 점도 거론되면서 원대한 포부를 가지지 못했다고 평가 받는다. 적어도 비교대상인 고발부차는 제나라 정벌을 진행하고 회맹에 끼여들어 패자가 되고자 하는 욕망을 확실하게 내비쳤으니 포부만은 미구천보다는 컸던 셈이다. 실제로 월나라는 미구천 이후로 그 국력을 제대로 써먹지도 못한 채 소극적으로 행동하다 내분으로 점점 약해지고 결국 국력을 회복한 초나라에게 허망하게 멸망하고 만다.[* 월나라가 제나라와 싸우게 되는건 미구천의 4대손 미예 때의 일인데 당시까지만 해도 월나라는 강국이었지만(전대인 주구왕 시기만 해도 묵자가 당시 강국으로 제나라, 삼진, 초나라와 '''월나라'''를 들었다.) 아무래도 미구천 때만은 못했는지 죄다 말아먹고 말년에는 도읍을 옮겨야 할 정도로 월나라가 쇠퇴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