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구희(서진) (문단 편집) == 기타 == 구희는 장수로서 주로 장수로서 뛰어난 모습을 보여줬지만 문관으로서의 능력 또한 뛰어났다. 그가 연주자사에 재직하던 시절, 관청의 문서 업무에도 탁월한 재능을 보여, 문서나 장부가 산적해 있어도 순식간에 처리했지만 빈 틈이 없어 휘하 관원들은 감히 그를 속이려 들지 않았다고 한다. 또, 구희는 강직한 면모도 있어 디음과 같은 일화가 존재한다. > 어느 날, 어린 시절부터 잘 챙겨주었던 구희의 이모가 자신의 아들을 장군에 임명시켜 달라 부탁하자 구희가 그녀를 만류하며 말했다. > "이 구희는 왕조의 법률을 남에게 집행함에 있어 관대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습니까?" > 그럼에도 그의 이모가 워낙 강하게 요청한 탓에 구희는 하는 수 없이 조카를 독호에 임명하였다. 이후 조카가 법을 어기는 사건이 발생하자, 이모가 머리를 조아리며 용서를 빌었지만 구희는 군법에 따라 그를 베었다. 그렇게 처형식이 끝난 후, 구희는 상복으로 갈아입고 조카 장례식에 참가해 목 놓아 울면서 말했다. > "그대를 죽인 자는 연주자사고, 동생을 위해 우는 자는 구도장(道將)이네." >구희가 법을 지킴이 이와 같았다. > ---- > 진서, 구희전 하지만 그의 이런 성격 때문에 법을 무척 엄격히 집행해 그가 자사로 있던 주의 태수와 현령은 자주 교체되었고, 처형 또한 매일 이루어져 그 피가 강을 이루었을 정도였다고 한다. 구희의 엄정한 통치를 견디다 못해 방랑을 택하는 사람들도 생겼으며, 백성들은 구희를 가리켜 '도백(屠伯)'이라 불렀다. 약관의 나이에 석감이 사례도위로 그의 상관이었다는 기록으로 미루어볼 때 240년대 또는 260년대 출생으로 보인다. [[분류:서진의 인물]][[분류:311년 사망]]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