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이동문서 삭제토론 국공내전 (문단 편집) === 전략적 실책 === 전쟁 초기 국민정부는 430만 명의 병력을 보유하고 있었고, 이에 비해서 중국공산당은 127만 명의 군대를 보유하고 있었다. 이에 내전 초기에는 국민정부가 우세를 점했지만 국민정부는 합법 정부라는 명분을 유지하기 위해서 점령지, 특히 중요 도시를 무리하게 고수하는 정책을 펼쳤고 유격전을 벌이는 홍군의 주력을 섬멸하는 데도 실패하였다. 이에 홍군은 국민혁명군의 수비가 취약한 만주, 허베이 지역의 주요 교통로를 확보한 뒤에 반격에 나섰다. 국민혁명군은 주요 대도시에서 보급이 차단된 채 중장비들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고 패퇴할 수밖에 없었다. [[창춘]]에 고립돼서 정예병력을 허무하게 잃은 게 대표적이다.[* 평소에는 잘 느끼지 못하지만 도시는 식량의 블랙홀로, 농어촌에서의 식품공급이 끊기는 순간 거대한 공동묘지가 된다. 국민혁명군이 대도시 사수에 집착하자, 홍군은 초기에는 특기인 농촌지대의 유격전으로 식량공급을 방해했고, 전열을 갖춘 뒤엔 대도시 포위전략으로 국민혁명군을 말려죽인다. 국민혁명군은 먹여살려야 할 사람은 많은데, 도시에 갇혀서 식량을 조달할 방법이 없었다. 게다가 중앙군과 군벌 사이의 갈등으로 내부 단합도 안 돼서 포위망을 뚫지도 못했다.] 거기다 국민혁명군은 말이 정부군이지 장제스 직할의 중앙군과 [[중화민국/군벌|군벌군]]이 혼재되어 있었기 때문에 통일적인 작전이 힘들었다.[* [[장제스]] 직할의 중앙군은 훈련도 충실했고 미국의 원조로 물자도 풍부한 데다가 중일전쟁을 거치면서 실전경험도 풍부했다. 초기에 군벌들이 중앙군의 지휘에 일사분란하게 따라주었다면, 내전의 전개는 많이 달랐을 것이다.] 군벌들은 개개인의 이해타산에 따라 행동하는 사적인 면이 강했기 때문에 자기들 멋대로 하기 일쑤였고, 심지어 장제스의 명령도 거부하는 등 막장 행태를 보여주었다. 국공내전 후기로 가면 총통 [[장제스]]와 부총통 [[리쭝런]]의 갈등이 극에 달하여, 장제스의 중앙군은 사천을, 리쭝런의 군벌군은 광서, 광동성을 지키려고 하였고 결국 어느 한쪽도 지키지 못하고 대만으로 도망가는 상황에 달하게 된다. 가장 결정적인 요인은 두 군대가 가진 전략의 차이였다. 홍군은 영토를 지키는 것에 집착하지 않고 전황이 불리하면 재빨리 철수하여 전력을 보존하는 전략을 썼던 것에 반해, 국민혁명군은 영토 방어에 너무 집착을 해서 전황이 불리해도 후퇴하지 않고 무리한 사수전을 고집하다가 전멸당하는 일이 잦았다[* 공교롭게도 이러한 점은 2차 세계 대전 무렵의 일본군과도 비슷했는데, 일본군도 전황이 불리하면 후퇴하여 전력을 보존한다는 전략을 좀처럼 쓰지 않았고 그저 후퇴하면 치욕이니 무조건 그 자리를 지키며 싸우다 죽으라고 병사들한테 강요하다가 헛되이 전력을 상실하는 일이 많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