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국공내전 (문단 편집) === 공산국가의 지원과 미국의 불신 === [[소련]]과 [[몽골]]은 만주를 통해 [[중국공산당]]에 대규모의 군수물자를 후원하고 있었고, 국민정부는 이를 막기 위해 만주로 진공했으나, 위에서 언급했던 바와 같이 전략적 차원에서의 실패로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 또한 [[북한]]의 [[김일성]] 정권과 소련군정 또한 물자 지원, 부상자 치료, 무역 등을 통해 중국공산당을 도왔다.[* 국공내전 초기 [[만주]] 지역에서 국민혁명군에 밀린 [[홍군]] 병력과 당간부 수만여 명이 [[압록강]]을 넘어서 북한으로 피신했다. 모든 물자를 버리고 맨몸으로 넘어왔던 이들은 휴식을 취한 뒤에 [[김일성]] 정권과 소련군정이 제공한 물자로 완전무장하고 다시 만주로 진격했다. 또한 내전기간 내내 북한은 홍군 부상자들을 수용해서 이들을 먹이고, 입히고, 재우고, 치료해주었다. 이런 관계가 [[중국공산당]] 지도부가 [[한국전쟁]] 참전을 결정하는데 영향을 끼친다.] 그러나 미국은 중일전쟁 기간 동안의 국민정부의 무능함에 실망해 추가 지원에 회의적이었고, [[그리스 내전]], 이란 위기[* [[페르시아 침공]]으로 이란이 연합국의 손에 들어오자 [[테헤란]], [[타브리즈]] 등 이란 북부 지방에는 소련군이 진주하게 되는데. 종전 이후 소련이 이란에서 철수하기를 거부했다.], [[베를린 위기]] 등 소련과 동유럽, 발칸, 중동 등지에서 이런저런 갈등을 빚게 되면서 중국에만 관심을 쏟을 수 없게 되었다. 다만 이는 소련도 마찬가지였는데 상대적으로 중요성이 떨어지는 아시아에 대한 두 진영에 대한 관심은 유럽보다 뒷전이 되었고 이는 상대적으로 장비지원에 대한 의존성이 높았던 국민당에게 더 큰 타격이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