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국공내전 (문단 편집) === [[중일전쟁]]과 제2차 국공합작 === 홍군이 괴멸되지 않고 서북부에서 세력을 확장하기 시작하자, 장제스는 [[만주사변]] 이후 본거지를 잃고 산시성에 주둔 중인 [[장쉐량]]과 [[봉천군벌]] 잔당 세력에게 토벌을 명하게 된다.[* 장쉐량의 동북 군벌은 [[동북역치]] 이후 형식적으로는 장제스의 [[중화민국]] 정부의 통치에 들어갔지만, 하지만 실제적으론 독자적인 행정 체계와 군사력을 보유하고 만주와 베이징 일대를 지배하던 독립 군벌로, 한마디로 장쉐량은 '''만주의 왕'''이었다. 하지만 만주 사변으로 본거지를 모두 잃고 잔존 병력 일부만 데리고 산시성으로 도망와서 눈칫밥만 먹는 신세로 전락했다. 예전 같으면 장제스의 명령 따위는 씹어버렸겠지만, 이제는 시키는 대로 할 수 밖에 없는 상황.] [[장쉐량]]의 군대는 홍군을 공격했지만 참패했고, 중국인끼리 싸우기보다는 일본과 싸우자는 공산당 측의 선전에 설득되면서 비밀리에 홍군은 휴전 협정을 맺고 전투를 중단한다. 이것에 열받은 장제스가 장쉐량을 닥달하기 위해서 산시성으로 오자, 오히려 장쉐량은 장제스를 구금하고 공산당과의 내전 중단 및 전면적인 항일 전쟁을 강요하는 이른바 '[[시안 사건]]'을 일으켰다. 결국 시안 사건의 여파로 "[[제국주의]]자 일본에 맞서 싸운다"는 명분을 내걸고 공산당의 홍군이 국민당의 국민혁명군의 지휘를 받는다는 형식으로 2차 국공 합작이 성립되었다. 1937년 [[일본 제국]]이 [[중일전쟁]]을 일으키자 장제스는 루산회의를 소집, 국민당의 모든 인물들은 물론 [[주더]], [[저우언라이]], [[펑더화이]]를 비롯한 공산당의 여러 주요 인물들까지 초청하여 [[루산성명]]을 발표함으로 항일 전쟁을 선포하였다. 그리고, 홍군을 국민혁명군 팔로군으로 편성하여 [[옌시산]] 휘하에서 일본군에 맞서 싸우도록 지시했다. 이후 홍군은 전쟁 초반에 옌시산과 협력하여 핑싱관 전투 등에서 일본군을 수차례 격퇴하였다. 그러나 일본군이 옌시산의 영지인 산시성을 공격하여 타이위안을 점령하고 옌시산도 산시 남방으로 밀려나자 공산당은 옌시산과의 협력을 중단하고 독자적인 활동에 나섰는데, 이 독자적인 활동이란 다름아닌 세력 확장이었다. 마오쩌둥은 일본군과의 교전을 극도로 회피하는 것을 명령하는 한편, '''해방구를 건설하여 [[홍군]] 지배 영역을 늘리는데 치중했고 한 때 [[화북]]의 일본군 점령지 중에 일본군이 통제할 수 있는 지역이 10%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일본군의 [[신멸작전]]으로 팔로군은 화북에서 약화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행동들은 국민당과의 협정 위반이었으며 엄연히 자신들이 상관으로 모시겠다고 자처한 국민당 상부의 모든 명령들을 무시한 처사였다. 이렇게 확장된 홍군 영역들은 대부분 국민당이 홍군에게 할당해줬던 영역 바깥이었다. 거기다가, 홍군은 '''국민당 유격대나 국민당 부대들을 필요에 따라 닥치는 대로 습격하기도 서슴지 않았고 국민당의 지방 정부를 소멸시키며 확장했다.''' 이 때문에 명목상 홍군의 상관인 [[옌시산]]은 물론이고 국민당 전체가 굉장히 열받았었고, 국민당 상부에서 수차례 "하라는 항일은 안하고 도대체 뭐하냐!" 라고 항의 전문을 보내기도 했지만 공산당은 그냥 무시해버렸다. 결국, 어그로가 오를 대로 오른 국민당과 공산당이 '''[[환남사변]]'''으로 대충돌하고 만다. 이 이후로 국민당은 공산당에 대한 모든 원조를 중단하고 공산당은 국민 참정회에 참석하는 것을 거부하는 등 실질적으로 국공합작이 깨지게 된다. 물론, 공산당 내부에서도 [[왕밍]] 등은 코민테른의 지령에 따라 국민당과 계속 협력하여 항일 운동에 나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으며 공산당도 중국인이니만큼 조국을 침략한 일본군을 보고 분개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때문에, 펑더화이가 [[백단대전]]을 계획했을 때는 홍군 지휘관들이 앞을 다퉈서 자청했고 작전에 원래 포함되지 않은 부대들도 자발적으로 참가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백단대전의 승리에도 불구하고 일본군의 피해는 미미했고 중국군의 피해는 컸기에 마오쩌둥은 백단대전이 전투를 회피하고 세력을 확장하는 자신의 방침에 어긋난다고 심히 못마땅해했으며 자칫 패배하기라도 했으면 기껏 모아놓은 세력이 모두 다 날아갈 판이었다고 버럭대는 바람에 그 이후론 공산당은 변변한 전투 기록을 찾을 수가 없게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