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국군재정관리단 (문단 편집) == 여담 == * [[한국프로야구]]가 출범하기 전 [[실업야구]] 시절 [[상무 피닉스 야구단#s-2.1|육군 경리단 야구부]][* 육군 소속 다른 스포츠단이 사용했던 '웅비'라는 이름을 쓰지 않았다.]를 운영했으며 당대의 스타들이 군복무와 야구를 병행했다. [[김봉연]], [[김준환]], [[김일권]], [[서정환]], [[차영화]], [[장효조]], [[김시진]], [[신태중]], [[권영호(야구선수)|권영호]], [[심재원(야구선수)|심재원]], [[김용철(야구)|김용철]], [[신언호]], [[김일환(1954)|김일환]], [[조종규]] 등이 육군 경리단 소속이었다. * 육군 경리단 야구부는 [[대한민국 공군]]의 야구단인 성무 야구단과 라이벌 관계였다. 각 군에서 운영하는 운동부를 통합하라는 방침에 따라 [[국군체육부대]]의 [[상무 피닉스 야구단]]으로 이어지고 있다. * 당시 육군 경리단 야구부는 야구 선후배가 아닌 입대일자 순으로 내무반(생활관) 서열을 정했다. 비록 밖에서 야구 선배라 할지라도 늦게 들어오면 육군 야구부 안에선 얄짤없이 후임이었다. 김시진은 [[한양대학교 야구부|한양대]]를 졸업하고 입대했으나 중학교 후배인 선임에게 군기 잡혀 꽤 어려움을 겪었고 이제 좀 선임 대접을 받을까 했는데 하필 대구상고-한양대 선배이자 당대 유명스타인 장효조가 입대했다. 장효조는 부대 배치 첫날 묵묵히 선임들의 군기교육을 받아들였지만 다음날 이른바 '장효조의 난'을 일으키고 말았고 그때부터 육군 경리단 야구부는 입대일자 순이 아닌 사회에서의 야구경력 순으로 천지개벽했다. 특별한 경우가 아닌 이상 전역 후 더는 볼 일이 없는 대다수의 현역병들과는 달리 야구 선수들은 어차피 전역해도 야구계에서 다시 만나야 할 사이들이라[* 이는 다른 종목 선수들도 마찬가지다.] 졸지에 김시진은 다시 맨 아래 후임으로 강등됐다고 한다. * 이때 세워진 전통은 [[상무 피닉스 야구단]]에도 남아있으며 1달간의 짬밥교육 후 축하파티와 함께 사회에서의 야구경력순으로 군복무를 한다.[* 지금은 해체된 [[경찰 야구단]]도 입대일자순이 아닌 사회경력순으로 대접했으며 상경(상병)이었던 [[나승현]]이 이경(이병)이었던 [[장원준]]의 아이싱용 아이스팩을 능수능란하게 만들어 바쳤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