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국민대회 (문단 편집) === 민주화 이후 === [[장징궈]] 정부때부터 종신의원 제도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지만 본격적인 개혁은 [[리덩후이]] 집권 시기 때 이루어졌다. 우선 리덩후이는 집권한 뒤로는 헌정복귀를 내세우며 종신의원들의 자발적인 퇴직을 권유했지만 종신의원 대다수가 퇴직을 거부하며 계속 의원직을 역임하려고 했고, 이들이 의회에서 상당한 세를 확보했기 때문에 개혁이 지지부진했다. 이에 국민들이 개혁지연에 반발하면서 종신의원 제도 개혁이 힘을 얻게 되었다. 이에 따라 [[1991년]]에 동원감란시기임시조관이 폐지되고 사법원에서도 헌법해석을 수정해 국민대회 대표의 임기를 [[1991년]] [[12월 31일]]까지로 못박음으로써 44년만에 직접선거 총선이 시행되었다. 헌법 수정이 이루어지며 임기가 4년으로 개편됨에 따라 [[1996년]]에도 선거가 치러졌다. 국민대회의 선거 방식도 [[중선거구제|중선거구]](지역구 및 [[대만 원주민|원주민]] 대표) 및 [[비례대표]] 병립으로 바뀌었고, 권한과 기능도 크게 개편되어 다른 나라에서의 [[상원]]과 비슷한 기능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본래 국민대회에서 치르던 [[대만 총통|중화민국 총통]]/[[대만 부총통|부총통]] 선거가 [[직선제]]로 개편되고, [[입법원]]과의 기능중첩 문제가 제기되었으며, 또 오권의 우위에 있는 기관인만큼 [[동원감란시기임시조관]]을 제정한 것처럼 언제든 다시 헌정을 무력화할 가능성이 있어[* 국민대회는 자체적으로 헌법 수정안을 입법하고 결의할 수 있었다. 따라서 불순한 정치적 의도를 가진 세력이 국민대회를 장악할 경우, [[나치당]]이 [[수권법]]을 제정한 것과 비슷한 방법으로 국민대회가 헌법을 갈아엎고 민주주의 정치체제를 무너뜨릴 가능성이 존재한다.] 국민대회의 존재 자체에 대한 비판 여론도 거세졌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