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국민대회 (문단 편집) == 기타 == * [[1992년]] 이전의 국민대회와 비슷한 성격의 기관으로 [[중국]]의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와 [[대한민국]]의 [[통일주체국민회의]]에 비교되기도 한다. [[입법원]]이나 [[대한민국 국회]]와 달리 국민대회, 전인대, 통일주체국민회의는 가끔씩 개최되는 것도 그렇고 국가 최고 의결 기구 역할을 했으며 모두 정권의 꼭두각시 노릇을 했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 대만의 국민대회는 공식적으로는 폐지된 것이 아니므로 국민대회와 관련된 법은 아직도 사문화된 채로 남아 있다. 2012년에 한 의원이 입법원에 이들 법에 대한 폐지 법안을 낸 적이 있는데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채 회기가 끝나 자동 폐기되었다. 유사한 역할을 하던 대한민국의 [[통일주체국민회의]]선거법과 통일주체국민회의법은 정치권의 공감대 하에 폐지되었지만, 중화민국 국민대회는 국가 건국 이념의 근간이기에 정치적 합의에 의한 폐지 가능성은 전혀 없다. 이 법을 발의한 의원은 소수정당이자 [[대만 독립]]을 지지하는 [[대만단결연맹]] 소속 의원이었으며, 현재는 원외정당이다. * 국민대회는 [[국부천대]] 이후 1960년대까지 타이베이 중산당에서 개최되었다가, 1970년대부터 가장 최근에 열린 2005년 국민대회까지 타이베이 외곽 [[양밍산]] 산기슭에 세워진 [[https://www.travel.taipei/ko/attraction/details/1026|중산루(中山樓)]]에서 개최되었다.[* 쑨원의 초상화가 그려진 대만 화폐 100위안의 뒤쪽 도안으로 그려져있는 건물이다.] 이 곳은 외국인 귀빈 접대나 국가 행사 개최지 등으로도 사용되었다. 국민대회의 활동이 사실상 종료된 후에는 사적지로 지정, 일반에 공개되고 있다. * 역사적으로 볼 때 굉장히 엄숙하고 아무 발언도 하지 못하는 형식적인 기관에 가깝지만 대만이 민주화되기 시작한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까지는 국민대회도 공성전이 벌어지는 등 나름대로 흥미진진한(?) 장면들이 많이 나왔다. * [[https://www.youtube.com/watch?v=BXNueQTXxI8&t=7s|1991년 4월 9일 중화텔레비전 보도]] [[민주진보당]] 대표들이 발언권을 계속 가지면서 본회의 의장단 선출 방법 표결이 지연되자 여당인 [[중국 국민당|국민당]] 사륭성 서기장이 회의 종료 30분 전에 35명의 서명을 받은 토론 중단안을 제출, 강제 표결하자 --한마디로 날치기-- 몸싸움이 벌어졌다. --[[쑨원|아버지가]] 지켜보고 있다-- * [[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94/1930156_19434.html|1994년 6월 7일 MBC 뉴스데스크 보도]], [[https://youtu.be/Ou5eFvneCMU|중화텔레비전 보도]] 여성 의원들이 서로 흉을 봤다는 사적인 이유로 국민대회장에서 패싸움을 벌이고 말리던 국민당 소속 여성 의원 마아이전(馬愛珍)이 심장 발작으로 실려가는 일까지 터졌다. 발언하던 의원은 국민당 궈쑤춘(郭素春) 의원[* 아들은 [[신베이시 제1선거구]] 국민당 소속 입법위원인 훙멍카이(洪孟楷)다.]이고 궈 의원의 뺨을 때린 의원은 민진당 쑤즈양(蘇治洋)[* 민진당 쑤즈펀(蘇治芬) [[윈린현]] 제1선거구 입법위원의 언니다.] 의원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