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국민혁명군 (문단 편집) == 개요 == [[중국국민당]]의 [[당군]]으로 당시 중국을 여러 조각으로 갈라먹던 [[중화민국/군벌|군벌]]에 대항하여 중국을 통일하기 위해 중국국민당이 창설하였다. 국민혁명군은 [[삼민주의]] 사상으로 무장하고 [[1차 국공합작]] 이후 [[소련]]의 지원을 받아 창설된 이후 [[장제스]]에 의해 [[조직구조]]가 가다듬어졌는데 당시 [[국민정부|중국]]을 자국편으로 끌어들여 [[제국주의]]의 포위망을 뚫으려는 소련의 인적, 물적 지원으로 [[황포군관학교]]가 세워졌고 여기서 배출해 낸 [[장교]]들이 국민혁명군의 기둥이 된다. 장제스는 이런 자원을 가지고 [[국민혁명|북벌]]을 개시하였고 [[4.12 상하이 쿠데타]]와 [[영한합작]]으로 장제스의 [[우파]]가 국민당의 주도권을 잡은 이후 국민혁명군은 독자적으로 북벌을 개시, [[중화민국 국민정부|중국 전역의 군벌 세력을 정리하고 명목상 중국을 통일하였다.]] 이후 1947년 [[중화민국 국군]]으로 개편되기 이전까지 사실상 [[국민정부]]의 [[정규군]] 역할을 수행했다. 정당 명칭이 국민당이라 당군임에도 줄여서 국군이라 호칭하기도 한다. 국민혁명군의 [[통수권]]은 국민정부군사위원회에 있었으며 이 조직의 수장은 [[위원장]](委員長)이다. [[장제스]] 이외의 다른 사람이 이 자리를 차지한 적은 없었고, 그는 결국 이 자리를 놓지 않음으로써 국민정부의 최고 권력자가 될 수 있었다. 국부군 계급상으로도 그는 최고위 계급인 [[대원수|특급상장]](特級上將)을 가지고 있었던 유일한 인물이다. [[한국]]에서는 장개석 '''[[대만 총통|총통]]'''으로 알려져 있지만 총통직이 신설된 것은 헌정이 실시된 1946년 12월로 장제스는 총통 자리에 앉은지 몇 년 지나지 않아 국공내전의 패전으로 대륙을 떠나 대만으로 갔기 때문에 이 시절을 기억하는 [[중국 대륙]]의 노년층에게 [[장제스]]를 대표하는 [[직책]]은 '''위원장'''이다. 영문 자료에서 그를 [[대원수|Generalissimo]]라고 칭하는 것도 이 때문. 수치상으로는 2차대전 당시 미국, 소련, 독일, 일본, 이탈리아를 이어 5위, 연합국에선 미국, 소련을 이어 3번째로 강력한 상당한 강군이였으나, 결국 여러 문제점으로 인해 중일전쟁 당시 큰 피해를 입고 중화민국 국군으로 개편된 국공내전에서 최종적으로 패배하고 포르모사로 망명했다. 부패하고 무능한 군대라는 평판이 전후 널리 퍼졌지만 20년 이상의 내전을 정리하고 중일전쟁에서 적어도 패배하지는 않은 분투가 재조명되면서 일정 부분은 명예회복을 하는 추세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