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국부천대 (문단 편집) === [[6.25 전쟁]]과의 관계 === 서로 비슷한 시기에 일어난 일이고 [[중화인민공화국]]-[[중화민국]]의 관계가 [[대한민국]]-[[북한]]의 관계와도 서로 닮은 점이 많기 때문에[* 물론 당시 역사적 관점에서 공통점이 있다는 것이지 두 전쟁의 결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6.25 전쟁]]과 비교되는 일이 잦다. 보통 [[냉전]] 시기의 공산주의-자본주의 진영의 대립이라는 관점에서 해석되는 편. 국민당이 대만으로 이전한 직후 중공군은 대만 침공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이전부터 국민당 정권을 엄청나게 부정적으로 봐 오던 미국은 공산당 쓸어 버리라고 국민당에 지원을 해오기는 했 는데 국민당이 대책없이 중국 대륙에서 밀려나는 것을 보자마자 미련없이 손절했으며 당시 [[트루먼]] 대통령이 공공연히 대만 섬에 개입하지 않겠다고 선언할 정도로 큰 관심이 없었다.[[https://china.usc.edu/harry-s-truman-%E2%80%9Cstatement-formosa%E2%80%9D-january-5-1950|자료]] 이때 [[미국 중앙 정보국|CIA]]도 얼마 못 가 대만 섬도 공산당에 점령되리라고 보았으나 [[공화당(미국)|공화당]] 내에서는 트루먼 대통령의 무관심이 [[중화민국|중국]]을 공산화했다며 불만이 많았다. 그런데 [[6.25 전쟁]]이 터지자 트루먼은 [[미군]] 파병을 결정함과 동시에 대만 해협에 [[항공모함]]을 띄워 공산 중국을 견제하기 시작했고 대만 침공을 위한 중공군 부대는 6.25 전쟁에 투입되어 소모되고 말았다. 이에 따라 6.25 전쟁의 휴전 후 중공군은 대만 침공을 포기했다. 상술한 바와 같이 소련은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자마자 승인한 국가들 중 하나인데 사실 당시 스탈린은 그 전까지 같은 공산주의자임에도 불구하고 [[마오쩌둥]]을 무식하다며 나쁘게 보았고 차라리 장제스를 더 선호했다. 그러다가 마오쩌둥이 승리하자 태도를 180도 바꾸어 UN에서 중화민국 대신 중화인민공화국을 중국(CHINA)으로 취급하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안전보장이사회]]를 장기간 보이콧했다. 덕분에 6.25 전쟁 당시 [[유엔군사령부|유엔군]]의 이름으로 대한민국을 지원할 수 있었다(유엔의 국제 분쟁 최초 개입). 지금도 유엔군 사령부(실제로는 미 8군 사령부지만)가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