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국성 (문단 편집) == [[한국]] 역대 [[왕조]]의 국성 == * [[고조선]]: 한(韓, [[청주 한씨]])[* [[위만]]의 찬탈 이전 [[준왕]] 계통 왕조의 성씨. [[삼국지]]에서 [[위략]]을 인용한 부분에서 나타난다.], 선우(鮮于, [[선우(성씨)|태원 선우씨]]), 기(奇, [[행주 기씨]]), 위(衛)[* [[위만조선]]. 단 위만의 衛가 성씨인지 아닌지 이설이 존재한다. 한국에는 기록 상으로나 실증적으로나 전해지는 위만의 후손은 없다. 한국에 있는 衛씨와 魏씨 모두 위만을 선조로 하지 않는다. 다만 일본 측 기록에 따르면 [[위만]]의 증손자이자 [[우거왕]]의 아들, 장항(長降)의 동생 "막(邈)"은 살아남아 후손을 유지하다가 그 후손인 태고(太高)가 610년 경 [[일본]] 월국 판명정(現 [[후쿠이현]])으로 이주하여 후데(筆, 필)씨를 개창하여 현재에 이어져오고 있다고 한다. 이 筆씨 성은 도일하자마자 받은 것은 아니고, [[728년]] 태고의 후손인 광족(廣足)이 붓 만드는 일을 하였는데 그 솜씨가 일품이라 천황으로부터 하사받은 이름이라고 한다. 현재 일본에 약 140명 정도가 있는 소수 성씨이다.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isHttpsRedirect=true&blogId=dodohooty&logNo=221458982474|출처]]] * [[부여]]: 해(解)[* 현재 학계의 중론은 고구려의 고(高)씨가 해씨에서 분화한 것이라기보다 서로 기본적으로 같은 성이며 순우리말(해)과 한자화(高) 한 정도의 차이가 있었을 뿐이라고 추정한다. [[해씨 고구려설]] 문서 참조. 해(解)씨는 2015년 기준으로 한국에 9명이 있는데, 부여의 국성이 이어져왔다기보다는 비교적 최근의 후대에 붙여진 성씨일 가능성이 크다. 실질적인 해씨의 후손은 각각 고구려와 백제의 국성(횡성 고씨, 부여 서씨, 의령 여씨)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 부여(夫餘)[* [[현왕(부여)|현왕]] 대부터 부여씨가 성씨로 쓰이게 된다.] * [[고구려]]: 고(高, [[횡성 고씨]])[* 오늘날 남아있는 그들의 후손은 [[횡성 고씨]]가 된다.][* 초기 왕들이 [[해씨]](解)였고 [[태조대왕]]이 이후까지 이어지는 고구려의 실질적인 첫 임금이라는 설도 제기되고 있다. 다만 이에 대한 현재 학계의 중론은 고구려의 고(高)씨가 해씨에서 분화하거나 역성(易姓)한 것이라기보다 서로 기본적으로 같은 성이며 순우리말(해)과 한자화(高) 한 정도의 차이가 있었을 뿐이라고 추정한다. [[해씨 고구려설]] 문서 참조.] * [[백제]]: [[부여(성씨)|부여]](扶餘, [[부여 서씨]], [[이천 서씨]], [[의령 여씨]])[* 오늘날 남아있는 그들의 후손은 [[부여융]]의 후손인 [[부여 서씨]], [[부여풍]]의 후손인 [[의령 여씨|의령 여(余)씨]]가 된다. 이천 서씨는 부여 서씨의 대종인만큼 마찬가지로 부여융 혹은 다른 부여씨 왕자의 후손일 가능성이 높다. 대구 서씨나 달성 서씨, 그리고 복흥 서씨 같은 나머지 서씨들은 부여 서씨와 마찬가지로 대종인 이천 서씨에서 분적하였다.][* 일본서기에서 [[위덕왕]]이 고구려장수에게 일기토를 신청했을 때 고구려와 성이 같다 말했는데 이는 엄격한 성씨적용을 할 경우 백제와 고구려는 성이 같고 씨가 갈라진 한가문이 된다.] * [[신라]]: 박(朴, [[밀양 박씨]]), 석(昔, [[경주 석씨]]), 김(金, [[경주 김씨]])[* 엄격한 성씨 개념을 적용할 경우 박, 석, 김 세 씨는 혁거세를 시조로 한 같은 성에 다른 씨족이라 주장하는 설도 있다.] * [[가야]]: 김(金[* 한자가 같은 신라의 김씨와 직접적인 연관은 없다. 신라의 김씨는 [[김알지]]가 시조이고 가야의 김씨는 [[김수로왕]]이 시조이다.], [[김해 김씨]][* 가야의 국성에는 [[고령가야]]의 국성인 [[함창 김씨]], [[소가야]]의 국성인 고성 김씨 등이 있으나, 대체로 [[김해 김씨]]가 6가야 전승에서 가장 맏이로 나타내어지고 가장 대표성 있게 여겨지므로, 김해 김씨에서 분적된 성씨로 보고 가야의 제례 등은 김해 김씨가 주관한다. 여담으로 이러한 6가야 성씨 분적을 이유로 [[동성동본]] 금혼 폐지 이전까지는 서로 결혼도 못하는 일도 있었다.]) * [[탐라국]]: 고(高, [[제주 고씨]])[* [[제주 고씨]], 한자가 같은 고구려의 고씨와 직접적인 연관은 없다. 전기 탐라의 국왕을 맡았으며, 후기 탐라의 서쪽을 성주로서 500년 이상을 통치했다.], 양(梁, [[제주 양씨]])[* [[제주 양씨]] 및 남원 양씨, 초기에는 良자였으나 이후 고쳤다. 탐라의 성주 및 왕자로서 통치했지만, 십수년의 짧은 통치기간이기에 많은 기록이 유실되었다.], 부(夫, [[제주 부씨]])[* [[제주 부씨]], 시조는 제주도 탐라국 건국설화의 부을나(夫乙那)이다.], 문(文, [[남평 문씨]])[* [[남평 문씨]], 탐라의 왕자(후일 조선의 우도지관), 후기 탐라의 동쪽을 왕자로서 약 300년간 통치했다. 기록상으로 전기 탐라시기 제주 고씨의 부마로 시작하여, 후기에 이르러 독자적으로 동부지역 통치를 시작했다.], 가(加)[* 제주 고씨의 오기리는 설이 있다. 약 20년 동안 일시적 탐라의 성주로 서쪽을 통치했다. 가(加)씨의 실존을 가정하더라도, 현재 해당 성씨를 쓰는 남아있는 후손은 없다.] * [[발해]]: 대(大, [[대씨|밀양 대씨]]), 태(太, [[태(성씨)|백주 태씨]])[* 오늘날 남아있는 그들의 후손은 [[대씨|밀양 대씨]]와 후에 태(太)씨로 개명한 [[태(성씨)|협계 태씨]]와 [[태(성씨)|영순 태씨]]가 된다.] * [[태봉]]: 궁(弓) 혹은 김(金)[* 기록상 [[헌안왕]] 혹은 [[경문왕]]의 아들이라고 한다. 불길한 징조가 있어 죽이라고 명했지만 유모가 빼돌리는 과정에서 실수로 아기 눈을 찔러 애꾸가 됐다는 이야기는 유명.][* 현존하는 후손은 [[광산 이씨]]와 [[순천 김씨]]가 있다고는 하지만, [[궁예]]의 자식들은 모두 궁예가 죽였기 때문에 어떻게 후손이 남아있냐는 비판이 있다.] * [[후백제]]: 견(甄, [[견(성씨)#s-2|황간 견씨]])[* 단명한 왕조라서 인지도는 낮지만 의외로 지금까지도 멀쩡히 존속하는 성씨이다. 유명인으로 [[견미리]]가 있다. 참고로 [[견훤]]을 [[진훤]]이라 불러야 한다는 설이 있는데, 견훤 문서의 해당 단락 참조. 만약 견 자를 진으로 읽어야 한다면 현대 한국의 견씨 성을 지닌 사람들이 전부 진씨로 바꿔야 하는 문제가 생긴다. 이제서야 독음을 바꾸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봐야 할 듯.] * [[고려]]: 왕(王, [[개성 왕씨]]) * [[조선]], [[대한제국]]: 이(李, [[전주 이씨]]) * ~~[[북한]]: 김(金, [[전주 김씨]][* 북한은 소위 [[백두혈통]]이랍시고 사실상 전주 김씨 세습 왕정을 만들었는데 전주 김씨가 신라 최후의 국왕인 [[경순왕]]의 직계 후손이기에 [[신라]] 왕조의 후손도 된다. 덧붙여 경순왕의 아내가 고려의 창업군주 왕건의 딸이기 때문에 여계 계승을 인정하는 고려 특성상 [[고려]] 왕조의 후손도 된다(…). 경순왕 본인은 경주 김씨이지만 그 직계 후손 중 한 명인 김태서가 고려 중기에 분파하여 전주 김씨가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