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국연(삼국지) (문단 편집) == 생애 == 어렸을 때부터 학문에 열심히 하면서 고전을 좋아해 스승 [[정현(삼국지)|정현]]으로부터 "국가적 인물이 될 것이다."라는 평을 받았다. 후에 [[병원(삼국지)|병원]], [[관녕#s-1]] 등[* [[화흠]]과 함께 일룡이라 불린 그 병원과 관녕이다.]과 함께 전란을 피해 요동으로 갔다가 귀환해 [[조조]]로부터 사공의 속관으로 임명된다. 조정에서 의논을 할 때 정색을 하면서 직언을 했지만 그 자리를 떠나서는 사사로운 감정을 갖지 않았으며, 조조가 [[한호#s-2]]의 제안으로 둔전제를 전국에 널리 실시하고자 할 때 국연에게 그 일을 관장하도록 했다. 국연은 여러 차례에 걸쳐 태조에게 이 제도의 손실과 이익을 진언하면서 토지를 헤아려 백성을 살게 해 인구를 헤아려 관리를 두었으며, 공과의 법령을 밝혀 5년 만에 창고가 풍부해지거나 백성들은 다투어 노력하고 즐겁게 일했다. 211년에 조조가 [[마초]]와 [[한수(삼국지)|한수]]를 토벌하러 갈 때 거부상사가 되어 수비하게 되어 하간에서 전은과 소백이 일으킨 반란을 진압했으며, 조조가 그 잔당을 죽이려고 하자 만류해 수천 명의 목숨을 건지게 했다. 그런데 국연은 적군을 격파한 공식 문서에는 하나를 열로 계산하는 구습을 무시했으며, 실제 숫자와 같게 하자 조조가 그 까닭을 묻자 국연이 대답했다. >대체로 경계 밖의 도적을 정벌하고 참수하거나 포로로 잡은 숫자를 실제보다 많게 보고하는 것은 무공을 크게 하여 백성들의 귀에 과시하려는 것입니다. 하간은 봉토 구역 이내인데도 전은 등이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비록 우리가 크게 이겨 공을 세웠더라도 저는 마음속으로 부끄럽게 생각했습니다. 조조는 그 말에 크게 기뻐해 국연을 위군태수로 임명했다. 한 번은 투서를 해 태조를 비방하는 자가 있자 조조는 그 주모자를 반드시 알고자 했는데, 국연은 투서의 내용에 이경부의 인용이 많은 것을 보고 서신을 남겨 조조가 한 말이 밖으로 나가게 하지 않게 했다가 공조에게 명을 내려 말하기를 >우리 군은 꽤 크며, 천자까지 여기에 있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문하는 자들이 적으니 이해력이 있고 나이가 적은 사람 몇을 골라 주시오. 스승에게 보내 배우도록 하고자 하오. 공조가 세 사람을 선발해 국연에게 보이면서 국연은 >너희들은 학문이 아직 미치지 못한다. 이경부라는 것은 온갖 일을 적은 책인데도 세상 사람들은 이것을 소홀히 취급하고 있어 그 스승이 적다. 라고 하면서 이들을 가르칠 사람으로 이경부를 해독할 수 있는 사람을 찾도록 했으며, 열흘도 채 못되어 읽을 줄 아는 사람을 드디어 찾아 수업하게 했다. 관리들은 이 기회를 이용하여 그에게 한 통의 편지를 쓰도록 해 그 편지와 투서의 필체를 비교해서 같은 것을 확인하자 그 자를 체포해 심문한 결과로 그 사실 여부를 드러났다. 국연은 태복의 직위까지 오르게 되어 고위직에 올랐지만 검소하게 생활했으며, 봉록과 하사품을 옛 친구와 친족들에게 모두 나눠 주었다. 공손하고 근검하면서도 겸허한 태도를 지키다가 재직 중에 죽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