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국제통화기금 (문단 편집) == 평가 == 1997년 외환위기 당시 IMF는 27%라는 살인적인 고금리 정책과 강도높은 구조조정 정책, 공기업 민영화를 한국에 요구했고 이로 인한 엄청난 [[정리해고]]와 뒤이은 [[비정규직]]법의 등장으로 [[1997년 외환 위기]] 이전과 이후의 한국 사회는 많이 다른 사회가 되었다. 외환위기 당시 사회적 혼란이 극에 달했기 때문에 IMF를 한국을 침탈하는 외세로 보던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그리스 경제위기]] 때는 한국보다 더 나라 꼴이 개판인 그리스에, 오히려 한국보다 훨씬 더 관대하고 온건한 긴축안을 제시하면서 "그리스보다는 사정이 나았던 한국은 그렇게나 죽어라고 줘패서 [[헬게이트]]를 열어 놓은 놈들이, 정작 한국보다 더 꼬라지가 개판인 그리스는 같은 서구국가라고 솜방망이로 봐주는 거냐?" 라면서 IMF를 욕하는 한국인들도 적지 않게 나왔다. [[https://www.hankyung.com/international/article/2011093057911|사설 - 인종차별적인 IMF의 이중잣대]] --안 고쳐도 욕처먹고 고쳐도 욕처먹고. 그러게 평소에 다른 나라 상대로 적당히 좀 해쳐먹지--[* 다만 IMF도 변명할 거리가 있기는 해서 한국같은 규모의 국가를 금융지원하는 것이 '''처음'''이었다. 다만 영국이 한국보다 먼저 금융지원을 받은적이 있긴 하다. 근데 영국의 경우 그 때 경제가 아무리 나빠도 한국에 비할바는 아니었다. 지원받은 금액도 영국이 40억 달러인데 비해 한국은 550억 달러다. 영국이 20년 전에 지원을 받긴 했지만 그래도 어쨌든 당시 영국 상황보다 한국 상황이 심각한건 맞다.] 비단 한국만의 일은 아니고 중남미 국가나 동유럽 국가,[* 대표적인 예로 [[러시아]]를 들 수 있는데, [[보리스 옐친]] 정부 시절에 IMF의 조언을 열심히 따랐다가 오히려 경제가 대망하고, 결국 1998년 지불 유예를 선언한 뒤에 [[예브게니 프리마코프]]가 총리가 되면서(다만 인기가 올라가자 옐친에 의해 1999년에 해임되었다) 부분적으로 통제경제정책을 재시행하여 오히려 경제가 다시 살아난 경험이 있다. 그래서 러시아도 IMF에 매우 부정적이다.][* 다만 [[알바니아]]는 예외다. 알바니아는 국가에서 [[피라미드 판매|피라미드 사업]]을 권장했는데 IMF에서 오히려 피라미드 사업의 범람을 경고하는 보고서를 내놓았기 때문.[* 사실 이건 너무 당연한데 이 사건 관련 문서로 들어가면 알바니아는 정부도 국민도 아무 대책없이 피라미드 사업에 투자를 했다. IMF가 아무리 욕먹는다지만 적어도 지원하는 나라의 경제 구조에 대한 조언을 하는 나라인 만큼 경제에 대해 이정도도 모를리가 없다. 딱 잘라 말해서 IMF가 특별히 눈이 좋은게 아니라 알바니아가 자본주의 경제에 너무 무지했다.] 당시 알바니아 집권 여당인 민주당에서 이를 무시했고 그 덕분에 [[1997년 알바니아 금융사기 사건|유례없는 전국구의 금융사기 사건]]과 그 여파로 준내전급 폭동까지 일어나며 사회당으로 정권이 교체되었다.] 현재 남유럽 국가들도 이런 이유로 IMF를 싫어하는 경향이 많다. IMF를 병원으로 비유하자면, 얼굴에 상처를 입은 사람을 치료하기 전에 "수술 후의 얼굴 모습은 내 마음대로 [[성형수술]]하겠다. 그 얼굴이 니 마음에 들든 안들든 상관없다. 여기 동의 안하면 치료해주지 않겠다"는 조건을 달고 수술을 시작하는 것이다. [* '돈을 빌려주는 대신 상대방이 자기가 빌려준 돈을 확실히 갚을 수 있게 만들어 놓는다'고 해석하는 곳도 있다.] [[1980년대]] 부터 시작된 제3세계의 외채위기[* [[스태그플레이션]]을 잡겠다고 [[폴 볼커]] 연준 의장이 21%까지 금리를 올리자 세계의 달러 자금들이 미국으로 몽땅 흘러들었다. <[[https://ko.wikipedia.org/wiki/%ED%8A%B8%EB%A6%AC%ED%95%80_%EB%94%9C%EB%A0%88%EB%A7%88|트리핀의 딜레마]]>를 참고할 것.]를 빌미로 미국은 IMF를 가지고 새로운 판짜기를 시도했다. 1980년대에는 베이커 플랜, [[1990년대]]에는 브래디 플랜이 IMF의 요구를 대표하여 등장했다. 1980년대에는 위기가 발생한 이유를 유동성의 부족에서 찾았다. 즉 자금의 통로만 터주면 [[제3세계]]가 국내 산업을 육성하느라 투자한 고정 자본을 곧 회수할 수 있으리라 본 것이다. 자금 중심적이던 IMF의 관점은 이후 구조 중심으로 전환되었다. 때문에 IMF 패키지 정책이라는 것이 만들어지는데, 이는 구조조정에 대한 요구로 정리될 수 있다. 구조조정의 핵심적 요구들은 다음과 같다. [[공기업]]을 [[민영화]]하고, 고금리로 해외 자금을 유치하고, [[구조조정]]과 노동시장 유연성을 늘리고, 정부의 재정 지출을 대폭 삭감하라는 것이다. IMF 패키지를 통해서 제3세계 국가들은 쑥대밭이 되었다. 제2세계인 유고슬라비아와 루마니아, 불가리아, 헝가리도 마찬가지로 외채 문제 때문에 IMF 패키지의 영향을 간접적으로 받았고, 결국 이들 나라의 경제 붕괴를 촉발시켜 체제를 전환시키는 데 간접적으로나마 도움이 되었다고 평가받는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어서 경제위기가 일어나 [[부마 항쟁]]을 촉발시켰다. 이후 [[전두환]]은 물가를 잡기 위해 갖은 방법을 동원하며 긴축정책을 펼치게 되며, 그러다가 80년대 중반에 '[[3저 호황]]'이 일어나서 경제위기에서 벗어났다. 이것은 서유럽과 미국 등의 자본이 거의 절대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는 IMF의 속성 때문에 발생한 일이다. 이런 일이 세계적으로 벌어졌던 것은 미국과 영국에서 고금리 정책을 취하면서 제3세계 국가들이나 동구권 국가에서 이자율이 급속히 상승했기 때문이었다. 한창 이자율이 낮았을 때 빌린 돈을 갚을 시기가 되자 이자율이 올라가 갚을 빚이 급속히 늘어났던 것이다. 그러나 늘어나는 빚에 대한 본격적인 대책은 80년대 후반에나 나왔고, 그 사이에 많은 제3세계 국가들이 파산해버리고 말았다. 이를 '워싱턴 컨센서스'라고 부르는데, 이에 반대하여 [[조지프 스티글리츠]]와 같은 IBRD 측의 인사들이 포스트-워싱턴 컨센서스를, 중국에서는 베이징 컨센서스 같은 것을 내세우기도 하였다. IMF에 워낙 호되게 데여서인지 한국 현대 판타지 소설중 기업인이 되는 소설은 환생자라 미래의 기억을 통해서 IMF를 예방한다거나 하는 소설이 있다. 또 한국 정부의 재정정책에도 막대한 영향을 끼쳤기에 관계자들은 농담삼아 기획재정부의 가장 깊은 곳에는 IMF에 대한 [[척화비]] 하나쯤은 서 있을 거라는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