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군대스리가 (문단 편집) == 그 외 == 대체로 기피 포지션은 [[골키퍼]]이다. 그래서 [[이등병]]이 어쩔 수 없이 맡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워낙 타고난 개발(볼을 제대로 차는 게 거의 불가능)이라 전전긍긍하던 사람이 골키퍼'''라도''' 열심히 뛰다 보니 고참들의 사랑을 받으며 대대 최고급 골키퍼가 되어 전역 때까지 골키퍼만 즐기다 전역한 케이스도 있다. 물론 개발인 탓에 골킥은 가까운 [[수비수(축구)|수비수]]에게 가벼운 땅볼패스를 해야 했지만. 골키퍼가 몸은 참 편하며 부상 위험이 제일 적기도 하다.[* 단 본인이 골키퍼 선출이면 하고싶어도 못하는 경우가 많다.그 이유는 '''누가 와도 못 넣으니까.'''] [[축구]]는 자신없는데 본인의 팔다리가 길고 반사신경이 나쁘지만은 않다면 한 번 쯤 포지션 전환(?)도 생각해 보자. 실제로 [[농구]]를 좋아하던 한 [[이등병]]은 그나마 손을 쓸 수 있는 [[골키퍼]]를 자원해서, 결국 [[병장]] 때까지 골키퍼로만 휴가증을 3개나 따낸 적도 있다. 포상으로 '''외박증이나 [[휴가증]]'''이 걸릴 경우 참가하는 모든 선수가 [[발롱도르]] 수상자급의 플레이를 한다는 설이 있다. ~~[[면제로이드|포상으로 전역이 걸린다면]] 원조 [[분데스리가]]도 제패할 기세.~~ 부대에 따라서는 어느 정도 체계화된 리그를 구축한 경우도 있다. 일정 기간마다 토너먼트전을 치르는 경우도 있으며 중대별/소대별 리그전을 치르기도 하며 심지어 '''1부 리그와 2부 리그를 갖춰 [[승강제]]까지 실시하는 부대'''도 있다. [[중대장]], [[대대장]] 등 지휘관이 축구에 환장한 사람일 경우 별의별 상황이 다 벌어지기도 한다. [[파주시]] 탄현에 있었던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모 부대는 [[축빠]]인 대대장의 주선으로 '''연병장에 [[인조잔디]]'''가 깔려 있었다. 장병들의 ~~대대장 본인의~~ 축구 복지를 위해서 깔았는데, 무겁디 무거운 인조잔디 매트는 [[60트럭]]으로 실어와 죄다 병들 [[작업]]으로 깔았다고. 육군 모 부대 대대장의 경우 연대 축구시합에서 우승할 경우 대대 '''300여 명 전원에서 대대장 포상휴가'''(4박 5일)를 약속했고, 실제로 우승하자 그 약속을 정말로 이행했다. 이런 휴가조치는 육군규정 위반이라는 인사장교의 진언이 있었음에도 직접 꼼수를 써 가며(8차례에 나누어 보내기) 휴가조치를 강행할 정도로 기뻐했다고 한다. [[공군]]의 경우, 전통적으로 축구보다는 [[족구]]가 인기가 많다. 우스갯소리로 쌍팔년도에는 [[전투기]] 날개 위에 금 그어놓고 족구했다는 개그도 있다. 콘크리트 깔린 활주로에서 비상대기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축구 대신 좁은 공간에서 짧은 시간 내에 즐길 수 있는 족구가 선호된다고 한다. 애초에 우리가 아는 공식적인 족구 경기 룰을 만든게 '''공군'''이다. 1966년 11비행단 정덕진 대위와 안택순 중위가 룰을 고안해 국방부에서 상까지 받았다. 특히 돌아가며 비상대기 중인 전투기 [[조종사]]들에게는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언제든 출격하기 딱 좋을 정도로 몸을 풀기에는 족구만한 운동이 없다고 한다. 이는 [[소방공무원]]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인데 소방공무원들의 족구실력은 국내 최강급이다. '''심지어 세계대회에서 우승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실제로 공군 기지들은 비행단급 이상이 아니면 연병장 있는 곳도 찾기 힘들고 --근데 대부분이 비행단으로 가지 않나?--, 연병장이 있더라도 대부분 다른 행사용으로 예약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육군보다는 축구를 즐기는 인원이 적다. 비행단에서 주로 축구를 플레이하는 계급은 간부들이며, 대대 대항으로 많이 즐긴다. 물론 비행단장(원스타)과 대대장교(위관부터 영관까지)들이 축구를 할 때는 모세의 기적을 볼 수 있다. ~~또한 단장으로부터 욕먹는 대대장을 보는 부하의 마음이란...~~ 모 비행단은 축구장과 풋살장이 1개씩 있는데 축구장은 주로 간부가 쓰고, 풋살장은 주로 병사들이 쓴다. 심지어 동아시아에서 가장 넒은 모 전투비행단은 축구장을 무려 6개나 가지고 있다. 군대를 다룬 코미디 드라마 [[푸른거탑]]에서는 오로지 계급빨로 모든 승부가 결정되며, 따라서 병장 등 선임층만 좋아하고 후임층에게는 지옥과도 같은 스포츠처럼 묘사되었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만 부대에 따라서는 계급보다 실력이 중시되는 등 나름 정당하게 축구를 하는 경우도 많은 편이다. 2008년 6월 11일 [[대한민국 국방부]]에서 정식으로 군대스리가를 출범해 버렸다. 육해공 79개 팀이 3개월여간 토너먼트를 거쳐 우승팀을 가리는 진지한 대회이다. 정식 대회 명칭이 '''선진강군! 한마음대축제 하이원 2008 군대스리가'''. [[http://www.korea.kr/policy/diplomacyView.do;JSESSIONID_KOREA=152PbKYTGqGRcTqbg377btdf1BDCjCDKJnnbG1B27dJNHQtljL21!-1109515730!-559251286?newsId=148654344|#]], [[http://www.korea.kr/policy/diplomacyView.do?newsId=148654343|#]] 국방부에서도 '군대스리가'라는 용어를 공식적으로 인정해버린 듯하다. [[http://economy.hankooki.com/lpage/politics/201111/e2011110813184893120.htm|국방부에서 2012년부로 전군에 1인당 1켤레씩 축구화를 보급한다고 한다]]. 굳이 축구를 안하더라도 축구화가 있으면 운동화(활동화) 대용으로도 쓸수 있고 하니 발건강에도 [[나름]]대로 도움이 될듯. 참고로 공군에서는 이미 2008년경부터 축구화를 보급했다. 공군에서는 [[공군군수사령부]]가 인트라넷에서 운영하는 E피복샵에서도 판다. 군대스리가 활동을 거쳐 프로축구선수로 데뷔한 [[김원일(축구선수)|김원일]]이라는 선수도 있다. 물론 온전히 군대스리가에서의 활약만으로 데뷔한 건 아니고, 입대 전 숭실대 소속의 축구선수였으나 선수로서 장래성이 불투명해지자 해병대 일반병으로 입대하여 군대스리가에서 맹활약했다. 제대 이후 숭실대로 돌아가 다시 실력을 갈고 닦아 [[포항 스틸러스]]에 드래프트로 입단하여 주전 선수가 된다. [[북한]]의 축구리그는 모든 팀이 군대팀이다. [[북한/스포츠]] 참조. 프로축구 선수였음에도 비겁하게(?) 과거를 숨기고 군생활을 꿀빠지게 한 케이스도 있다. [[경남 FC]]에서 은퇴했던 [[이용발]]이 바로 그 대표적인 케이스인데, 남북단일팀 대표도 했었던 이용발은 1997년 경찰청 입단 테스트에서 탈락해 막군으로 가는 비극을 겪었다. 당시 골키퍼라면 국가대표 급인 [[김병지]]나 [[이운재]], [[서동명]] 정도가 유명했고, K리그는 인기가 없었기 때문에 자대의 누구도 이용발이 프로선수인 줄 몰랐다. 단지 공 잘 차는 후임이라며 총애 받았을 뿐. 그런데 골키퍼라도 프로선수답게 일반인과 기본적인 수준부터가 달랐던 이용발은 군대스리가에서 골키퍼만 하지 않고, 수비수, 미드필더를 뛰다가 심지어 최전방 스트라이커로 나서며 그야말로 눈부신 활약을 펼쳤다.[* 일반인들과 프로선수의 차이는 정말 우주와 땅 차이다. 게다가 이용발은 K리그 역사 상 골키퍼 포지션에서 발기술과 킥력이 좋기로 손꼽히는 인물 중 하나다.] 그렇게 원없이 볼을 차며 감각을 유지하다 1999년 소속팀인 [[제주 유나이티드|부천 SK]]로 돌아왔다. 그런데 군대 시절 필드 플레이어로 뛰었던 경험 때문인지 이 시기 이용발은 전진수비를 하다가 골을 먹는 일이 잦았고 전역 직후 한동안은 좀 높고 빠르게 날아오는 슈팅은 제대로 막질 못했다고 한다. 대신 스트라이커나 미드필더까지 소화한데서 알 수 있듯 골키퍼치곤 발밑이 좋았다. 파라과이의 [[칠라베르트]] 골키퍼처럼 프리킥을 직접 차기도 했고 골킥도 굉장히 빠르고 정확해서 2000년에 1득점 3어시스트를 했다. 이 부문에서 전설로 남을 선수는 '''[[이근호]]'''. 프로로 뛰다가 '''군대들어가서 축구하다가 대표팀이 되어 월드컵에 나갔더니 골을 넣어서 왔네?''' 그리고 1994년 월드컵 스페인전에서 골을 넣은 [[서정원]] '이병'도 있었다. [[2015년 대한민국 메르스 유행]] 중 초기에 감염되었다가 완치자로 기록된 공군 김 모 원사가 언론에 보도될 때 목발을 짚고 등장하여 사람들이 사뭇 놀란 바 있었는데, 당연히 메르스 때문은 아니고 군대스리가에서 [[아킬레스건]]을 다쳐서 입원했다가 감염된 거라고 한다. 옷으로 팀을 나누기도 한다. [[대한민국 해병대]]에서는 빨간색 활동복 팀과 전투복 팀으로 나누어 축구를 할 정도. 굳이 해병대가 아니라도 조끼 색깔 등으로 어느 정도 구별은 가능하다. 어떤 공군 부대는 아예 체련복 상의로 팀을 구별하는 경우도 있다. 바로 체련복 상의를 입은 팀과 이를 벗은 팀. 특공대는 포메이션 없이 그냥 골키퍼 1명에 멀티포지션 10명으로 축구를 하기도 한다. [[SBS]] [[심심남녀]] 제3회 수다편(2001년 11월 18일 방송)에서 '군대 얘기', '축구 얘기', '군대에서 축구하는 얘기'가 화가 난다고 했다. 양 팀에 30여명 정도의 선수가 뛰고(전 중대원 참가) 공을 2~4개를 놓고 하는 이른바 '총력 축구', 아침 먹고 전반전, 점심 먹고 저녁 먹을 때 까지 후반전을 뛰는 (이등병은 하루 종일 뛰어야 한다) '마라톤 축구' 등 다양하며 기괴한 경기방식이 존재한다. 경기 결과는 [[핸드볼]] 수준의 스코어가 나온다 [[카더라]]. 치킨브랜드 [[맘스터치]]가 [[CSR]]의 일환으로, 2002 월드컵 멤버들을 모아 동명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쉽게 말하면 월드컵 국대 VS 군대 올스타.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57&aid=0001368222|관련 기사]] 유튜브에서 전 경기를 촬영해 올리는 모양. 시간이 많이 지난 현재 군대스리가의 인기는 점차 떨어지고 있다. IT 발달로 인해 전군 생활관 IPTV 보급이 이루어진 지 오래이고, 계급별로 생활관도 분리되어 TV를 못 보는 경우도 줄었다. 게다가 TV 이외에도 게임기나 노래방 기계가 들어오고 화상전화기까지 생긴데다, 일과 시간이 끝난 [[개인정비]] 시간에 휴대폰도 반납받아 사용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비단 축구뿐만 아니라 기타 체육 활동도 이런 [[개인정비]] 시간 때 할 게 없어서 하는 느낌이었으나, 이제 병사들은 시원한 그늘 아래에서 [[에어컨]] 바람 쐬가며 핸드폰이나 할 것이다. 물론 이렇게 되어도 간부가 전투체육활동하자고 하면 어쩔 수 없이 끌려나와야 하겠지만... 암튼 자발적으로 하게 되는 경우는 많이 줄 것이다. 행정보급관들은 좋아할 듯.[* 사실 군대스리가 말고도 오프라인 상에서 발생하던 가혹행위가 과거에 비해 꽤 줄어들었다고 한다. 이유는 선임이나 후임이나 사이좋게 자기 핸드폰만 만지니까(...).] [[분류:군대 관련 속어]][[분류:축구]]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