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군사도시 (문단 편집) == 상세 == 군사도시는 지리적으로 교통이 편리한 요충지, 전략전술적 가치가 높은 곳, [[수도(행정구역)|수도]]와 가깝거나 연결되는 거점, 지켜야 하는 [[대도시]] 그 자체 혹은 그 주변부에 건설된다. 역사적으로 [[도호부]]와 [[감영]], [[유수]], [[병마절도사]], [[수군절도사]], 기타 영과 진들이 있던 도시들이 해당된다. 시대를 막론하고 중요한 도시였던 [[평양]], 고려시대 [[개경]]과 조선시대 [[한성]]의 해양 길목을 방어했던 [[강화도]], 조선시대의 [[개성시|개성]], 한양 밑의 [[수원]], 경상도의 [[안동시|안동]], [[대구광역시|대구]], [[진주시|진주]] 같은 도시들이 그러했다. 고구려의 [[요동성]], [[안시성]], [[부여성]], [[비사성]] 같은 유명한 성들은 그 자체로 군사요점이자 주변에 인구가 많았던 도시들이었고, 조선의 [[4군 6진]] 역시 함경도를 방비하던 군사도시였다. 전근대의 군사도시라고 하면 [[요새]]로 많이 활용되었던 [[성(건축)|성]]만을 연상하기 쉬우나, '성'(城)은 단일 군사시설인 반면 '군사도시'라는 개념은 군사적 이점으로써 도시로 발달한 지역을 가리키는 말로서 성을 위시한 군사시설을 포함하는 그 일대 도회지이다. 더욱이 일상적·대중적으로 성이라는 말로 간단히 포괄되고는 하여도, 구체적으로는 그 범주 안에 다양한 유형의 방어시설이 포함된다. 게다가 전근대 도시의 경우 재정적 여유가 된다면 특별히 군사적 목적이 아니어도 자체방어 목적에서 성곽(wall)을 두르고 성채(citadel)를 구축하는 경우도 많았다. 만약 그러한 방어시설이 충분히 넓으면 내부 지역만으로 도시 역할을 할 수 있지만, 건설부터 유지까지 여간 돈이 많이 드는 게 아니다보니 정말로 도시 전체를 다 둘러서 성을 쌓은 사례는 역사상 전체 주거지 중 소수였다. 무엇보다도 인위적으로 조성하지 않는 한 도시의 탄생과 성장은 자연적으로 이루어졌기에 원래 시가지 전체가 성내에 있었더라도 후대에는 성 밖으로 시가지가 확대되는 경우도 많았다. 따라서 도시들은 보통 아예 방어물이 없고 따로 피난용 성채 같은 것만을 두거나[* 고대도시에서는 후대에 이곳이 시가지 내로 흡수되면서 도심으로 발달하기도 했는데, 그 중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가 가장 유명한 사례이다. 중세 동안에도 크고 작은 촌락들이 인근 도시나 (비거주성) 공동성채 같은 것을 피난처로 삼고는 했다. [[한국사]]에서의 [[읍성]]과 [[산성]]도 그러한 역할을 하였다. 다만, 읍성은 행정 상의 목적이 강하다보니 일시적인 소요나 소규모 도적 상대로는 몰라도 대규모 외적이 쳐들어오는 전시에는 큰 방어력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읍내|성내]]와 주변부로 구분하여 도시 일부만 방어하게 쌓는다든지[* 특히 [[자유도시|중세도시]]들 사이에서 이런 곳이 많았다. 구조적으로는 오래되고 번창하는 도시일 경우 지휘소 겸 최후거점인 아성(keep)을 중심으로 성채(citadel)가 있고 구시가지를 둘러싼 도시성벽(wall)이 있으며, 그 외부에는 무방비 상태의 신시가지가 펼쳐져 있었다.] 방어선의 일부는 지형지물을 활용하는 식으로 건축했다. 결론적으로, 방어시설의 유무 만으로는 군사도시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삼을 수 없다. 군사적 요충지라면 자연스럽게 군사시설의 일부로서 방어시설이 들어서기 마련일 뿐, 중요한 것은 그 도시가 군사적 목적에 의지하여 탄생하고 유지되는지 여부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