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군사영어학교 (문단 편집) == 군번 1번 문제 == 좀더 부연 설명을 하자면 조선이 일본과 통합되는 과정에서 일본육사에서 위탁교육 중이던 조선인들은, [[지청천]], [[김경천]]처럼 중국으로 도망가서 독립운동에 투신한 자들도 있고, 지청천의 설득을 거부하고 남은 [[홍사익]], [[이응준]], [[유승렬]](이상 일본 육사 26기) 같은 자들이 있다. 그런데 오랫동안 조선인 입교자가 없다가 1930년이 돼서야 조선인 입교가 가능해져서 [[채병덕]], [[이종찬]]이 49기로 졸업 후 임관 하였다. 그 바람에 조선시대의 이응준 같은 원로들과 차이가 많이 난다.(홍사익은 중장, 이응준/유승렬은 대좌, 채병덕은 소좌) 이응준, 지청천 등의 원로들은 한국군 창군기에 대령등으로 특별임관 하였다. 그에 비해 채병덕 소좌 이하로는 전부 군사영어학교를 거치게 된다. 만주군의 경우 2년제 [[만주국육군군관학교]]는 1932년에 세워졌고, 일본계는 전원 일본 육사에 편입하였고, 비일본계는 성적 우수자에 한해 일본육사에 편입했는데[* 조선인은 만주계에 속했는데 일본어를 잘해 조선 출신 중 반 이상이 성적 우수로 일본 육사 본과로 편입되었다. 대만계/만주계는 일본 육사를 갔다 온 즉시 독립군에 투신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지만 조선인의 경우 그런 일이 단 1건도 없이 천황폐하께 충성을 다했다. 그에 대한 보답인지 1942년 입교자부터는 일본계으로 계산되어 전원 일본 육사로 편입되었다.] 여기에 최선임인 [[김석범]]이 일본 육사 54기 상당, 동기생이였던 [[정일권]]이 55기 상당으로 일본 육사로 편입되었다. 즉 특별임관한 대한제국 출신 장교들을 제외하면 채병덕과 이종찬이 최선임이고, 특히 채병덕은 소좌, 이종찬은 대위로 채병덕이 최선임, 최고참 군사영어학교 수료자이다. 그런데 난데 없이 이형근이 군번 1번을 가져가버렸다. 채병덕은 일본49기의 선배이고, 이형근은 56기이다. 특별임관한 광복군 출신의 원로들에게 군번1번을 안 준것은 미군정에서 그딴 거 인정 안 하니 어쩔 수 없다고 치더라도, 채병덕 입장에서는 자신에게 군번1번을 안준 것은 환장할 노릇. 그 바람에 이형근이 장인 [[이응준]] 백으로 군번 1번을 받았다고 비난하고, 이형근은 시험을 보고 ~~선착순~~ 성적순으로 군번을 매겼다고 하다가, 시험 자체가 없었던 것이 들통나니, 말을 바꿔서 일본군에서 보내준 자료를 검토해서 미군정에서 군번 1번을 주었다고 주장한다. ~~ 일본 육사 기수로 군번 뽑을 거면 [[이응준]]이 1번 아닌가? ~~ 왜 군번1번 문제를 언급하냐면 이것이 결국 채병덕과 이형근 사이의 한국군 최초의 파벌 싸움 문제로 번지게 되었고, 이것은 6.25 당시 까지 연관이 되어 파벌 싸움 때문에 6.25 직전에 참모총장 및 각군 주요지휘관을 바꾸던 이유가 되었기 때문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