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군주론 (문단 편집) == 상세 == 군주론이 집필될 당시, 이탈리아는 강력한 중앙집권국가로 뭉쳐 있지 못하고 여러 소국으로 분열되어 있어 힘이 약했다. 반면 프랑스나 스페인 등은 저마다 중앙집권체제를 완비한 뒤 군사력은 보잘 것 없지만 경제문화적으로는 풍부한 땅인 이탈리아를 노리게 되는데, 이로써 벌어진 전쟁을 [[이탈리아 전쟁]]이라 한다. 이러한 현실을 맞아 마키아벨리는 하루빨리 이탈리아가 야만인들의 지배로부터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그를 위해 『군주론』을 집필하기에 이른다.[* 이는 마지막 장(26장)인 야만족으로부터 이탈리아를 해방시키기 위한 권고에 여실히 드러나 있다.] 『군주론』은 정치학의 중요한 고전으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마키아벨리를 유명하게 만드는 데 가장 크게 기여한 저서이다. 여기서 마키아벨리는 남의 역량과 힘이 아닌,''' '자신의' 역량(비르투; virtu)과 힘(법과 군대)으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할 것을 촉구하면서, 그러기 위해선 필요(네체시타; necessità)에 의해서 비도덕적인 정치 행동을 할 때도 있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최초로 정치와 도덕을 분리'''시키려 한 시도[* 굉장히 중요한 개념인데, 사실과 당위를 분리시켜 생각하는 서양 정치철학의 개념의 원류이다. 이른바 '''현실정치'''라는 개념이 마키아벨리에서부터 시작한 것.]로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점은 군주론 본문 15장 중에 나오는 "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당위)와 '어떻게 사는가'(현상)는 매우 다르다"라는 문장에서도 잘 드러난다.[* 마키아벨리가 말하는 군주의 미덕은 권력과는 확연하게 구분되는 개념이다. '''아주 뚜렷하고 명확하며 좋은 목적'''을 위해 사용될 경우 정당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어떤 일이든 용서되는 것이 아니라 다분히 '''효과적인''' 방법만이 정당하다는 것. 즉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한마디로 압축하면 '''극도의 합리주의적 통치관념'''이라고 할 수 있다. [[애덤 스미스]]의 사상을 이해하기 위해 [[국부론]]만 읽어서는 안 되고 '도덕감정론'을 같이 읽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마키아벨리의 종합적인 사상을 알고자 하면 그의 가장 중요한 저서로 꼽히는 『로마사 논고』를 같이 읽어봐야 한다.] 군주론은 신하를 다루는 법, 상비군의 필요성과 용병의 해악, 요새의 기능, 중립의 해악 등 그야말로 통치 지침서로서의 내용에도 충실하다. 여기에 추가로 어떤 도덕적 행동이 실질 통치에 해악을 끼치고, 어떤 비도덕적 행동이 실질 통치에 유용한지를 설명하는데, 군주가 국가를 통치하고 유지하기 위해서 필요하다면 도덕적이지 말아야 하며, 불성실, 몰인정, 잔인해도 무방하고 심지어 기독교가 지배하던 그 시대에 반종교적인 행동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모델로서 잔인하기로 유명한 동시대의 인물 [[체사레 보르자]]를 꼽는다. 다만 마키아벨리는 체사레 보르자를 비판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체사레 보르자가 끝까지 철저하게 상대방의 싹을 자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즉 더 철저하게 했어야 하는데, 마지막에 와서 체사레 보르자는 순진하게 상대방의 호의를 믿었다는 것. 물론 마키아벨리에 따르면, '''잔혹하고도 비열한 수단과 방법은,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필요에 의해서 쓰되, 민중의 안전과 자유라는 공익을 증진시키는 '결과'가 반드시 따라와야 하며, 그 행사는 '일시적'이어야 한다.''' 즉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만 쓰는 일시적인 비상 수단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마키아벨리가 드는 예시들은 거의 대부분 '''부자, 귀족, 유력자''' 중에서 경쟁자가 될 수 있는 사람을 비열한 방법으로 죽이라는 것이며, 민중들을 죽이라는 얘기는 아니다.[* 마키아벨리는 민중을 죽일 때는 "명백한 이유와 적절한 명분이 있어야 한다(17장)"고 말하지만, 자신을 위협할 수도 있는 잠재적인 경쟁자를 죽일 때는 그런 이유나 명분 없이도 체사레 보르자처럼 거리낌없이 경쟁자를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마키아벨리는 민중들을 죽임으로써 얻는 군주의 자리는 '영광'스럽지 않기 때문에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또한 민심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부하도 과감하게 [[꼬리 자르기]]'''해라는 예시[* 체사레 보르자는 자신의 집사(레미로 데 오르코)에게 한 지역을 엄격하게 관리하라고 명령하고, 그 지역 민심이 흉흉해지자 곧바로 그 집사의 목을 짤라서 민심을 달랬는데, 이를 두고 마키아벨리는 매우 훌륭한 정치의 표본이라고 칭찬한다.(7장)]를 드는 등, 군주론을 살펴보면 의외로 민중에 대해서는 극도로 호의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민중이 중요한 이유는, 민중이 비르투(virtu)를 가질 때 나라가 부강해지기 때문이다. 여기서 비르투는 보통 '역량'으로 해석되지만 마키아벨리가 '민중의 비르투'에 대해서 얘기할 때는 보통 '애국심'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애국심이 강한 민중들이 있을 때, 대다수의 민중들은 그 군주와 나라를 적극적으로 지키려고 하기 때문에, 소수의 배신으로 나라가 탈취되는 것을 막을 수 있고, 외부의 침략에도 민중들이 일치단결하여 쉽게 물리칠 수 있다. 따라서 그 군주는 정권을 오래 유지할 수 있을 뿐더러 나라도 부강해져서 외부에 영향력을 끼칠 수 있기에, 그런 나라의 군주는 비로소 위대한 군주가 될 수 있는 기반을 다진 것이라고 마키아벨리는 강조한다. 그러므로 잔인하고도 비열한 수단은 이런 결과를 성취하기 위해서라도 필요한 경우에 사용해도 된다는 것이 마키아벨리의 생각이다. 마키아벨리의 의도를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주변의 모두가 기만적인 방법을 다 사용해서 혼자 도덕적으로 굴면 도저히 권력을 잡을 수 없고, 그 권력을 가지기만 한다면 '민중의 생명과 자유'를 상대적으로 더 보장할 수 있을 때, 비열하고도 잔인한 방법은 자신의 위험한 상황을 일시적으로 모면하고자 쓰는 [[필요악]]으로 용인될 수 있다는 것. 이는 『군주론』 내에서 거듭되는 주장이며, 마키아벨리의 다른 주저 『로마사 논고』에서도 확인된다. 하지만 당시 사람들은 이 '제한'을 무시하고 단지 '권력을 잡기 위해서는 뭐든지 해도 된다'는 식으로 단순하게 해석되어 버려, 많은 오해를 가져오는 계기가 되었다. 『군주론』의 단면적인 모습은 잔인해 보이기 때문에 가톨릭적인 사상에 반한다고 판명되어 결국 교황청에 의해 금서로 지정되었고, 또한 이후의 독재자들은 마키아벨리의 사상을 대부분 부정하고 좁은 범위의 전술적 쟁점에만 집중하여 의도적으로 오독하고는 자신의 권력을 위해 민중들을 핍박하기도 했다. 그 결과 '마키아벨리즘', '마키아벨리스트'라는 단어는 이런 과정 속에서 극도로 혐오적 단어로 인식되었다. 지금까지도 이런 인식으로 널리 알려진 편이다. [[버트런드 러셀]]에 따르면 군주론에서 주장한 것은 부도덕한 것이 아니라 단지 권력을 획득하고 싶으면 '냉철'하게 현실을 봐야 하는 것이고, 그것이 선인지 악인지는 다른 문제라고 주장했다. 즉, 정치를 분리시켜 본 것일 뿐 부도덕한 시점에서 본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다음은 까치사 강정인 역 군주론 인용이다. >군주가 위에서 말한 것들 중 좋다고 생각되는 성품들을 모두 갖추고 있다면 그야말로 가장 찬양받을 만하며, 모든 사람들이 이를 인정할 것은 나는 알고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갖추는 것이 가능하지 않고, 상황이란 것이 전적으로 유덕한 삶을 영위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기 때문에, 신중한 사람이라면 자신의 권력기반을 파괴할 법한 악덕으로 악명을 떨치는 것을 피하고, 또 정치적으로 위험을 초래하지 않는 악덕들도 가급적 피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만약 그렇게 할 수 없다면 후자의 악덕은 별다른 불안을 느끼지 않고 즐겨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 없이는 자신의 권력을 보존하기 어려운 악덕으로 악명을 떨치는 것에 관해서는 개의치 말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것을 신중하게 고려할 때, 얼핏 유덕한 것으로 보이는 어떤 일을 하는 것이 자신의 파멸을 초래하는 반면, 일견 악덕으로 보이는 다른 일을 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자신의 입장을 강화시키고 번영을 가져오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군주론』을 [[메디치 가문|메디치 가]]에 바친 이유가 마키아벨리는 내심 [[공화정]]을 옹호했기 때문에 '이걸 실행해서 시민의 반발에 부딪쳐 좌초해라'였다는 해석도 있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을 원래 [[줄리아노 디 로렌초 데 메디치]]에게 바치려고 했으나, 돌연 마음을 바꾸어 당시 메디치가의 햇병아리 군주 [[로렌초 2세 데 메디치|로렌초 데 메디치]]에게 바치기로 결정하는데, 마키아벨리가 자신보다 나이가 23살 어린 군주에게 이런 책을 헌정한 이유가 메디치가를 빨리 몰락시키고 공화정을 다시 수복하기 위한 전략이었다는 것이다. 『군주론』에서는 잔인한 수단으로 상대방을 배신하라면서 정작 민중에게는 되도록 피해를 주면 안 된다고 역설한 점에서 그런 생각들이 잘 드러난다는 것이 이 해석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생각이다. 다만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먼저 읽어본 친구들의 반대에 의해 메디치가에는 실제로 전해지지 않은 것으로 보이며, 그래서 만약 이 해석이 맞다고 하더라도 이 계획(?)이 실제로 진행되지는 않은 것으로 본다.[*반대 : 사실 음모 이론으로 해석하는 것은 그렇게 신빙성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군주론에서 마키아벨리는 당시 분열된 이탈리아의 상황을 개탄하고 혼란을 종식시킬 필요성을 역설한다. 또한 공화정과는 거리가 먼 체사레 보르지아를 찬양했으며 자신을 채용할 것을 부탁한다. 그런데 구태여 메디치 가문이 붕괴되기를 기대했다는 해석은 근거가... 게다가 인민의 증오를 불러서는 안된다며 악을 행하면서도 반발을 최소화할 방법을 몇가지 제시한다.][*찬성 : 그러나 사실상 이 설명에는 문제가 있다. 메디치 가의 좌초를 노렸다고 한다면 군주론에서 [[체사레 보르자]]를 찬양하지 않을 이유도 없고, 자신을 채용해 달라고 역설하지 않을 이유도 없다. 어차피 그들의 좌초를 노린 책이라면 그의 진짜 주장과는 다른 것들이 담겨 있을 것이다. 실제로 그가 이후 저술한 <로마사 논고>에서 그는 충분히 공화주의자로서의 모습을 보여준다.] 또 다른 해석은 ‘공화정 준비론’이다. 마키아벨리가 강력한 군주의 존재를 혼란을 수습하고 공화정으로 가는 불가피한 과정으로 보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단 강력한 군주가 이탈리아 통일 국가를 먼저 탄탄하게 세운 뒤에, 공화정으로 넘어가겠다는 목표를 세웠다는 것이다. 『군주론』 다음에 『로마사 논고』를 지었다는 것도 이런 주장을 뒷받침해준다. 당시 피렌체는 물론이고 이탈리아 대부분의 공화정들은 엄청나게 많은 분열과 혼란, 대립이 있어 왔다. 이런 상황에서는 공화정의 발전은 커녕 외세의 먹이가 될 뿐이었다. 진정 강한 공화정을 만들기 위해서는 전제정치든 군주국이든 일단 나라의 힘을 기를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이 해석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원래 공화정 옹호론자인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을 먼저 저술한 까닭도 이 이유 때문일 것이라고 주장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