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굴묘편시 (문단 편집) == 여담 == 이 일 때문에 [[PTSD|초나라에는 시신을 포함해 왕의 몸에 해를 끼치면 처형하는 법]]이 생겼고, 후일 [[오기(전국시대)|오기]]가 [[동귀어진|최후의 승부수]]를 띄우는 데도 일조하였다. 후대에도 굴묘편시가 있었는데 남조의 진나라를 세운 무제 [[진패선]]의 무덤인 만안릉 사건이다. 남조의 양나라가 [[후경]]의 난으로 거의 몰락하자 한족 출신 장군 진패선과 선비족 출신 장군 왕승변은 각각 군대를 이끌고 후경을 박살내고 권력을 잡는다. 이 둘은 겉으로는 서로 겹사돈을 맺고 의기양양했으나, 속으로는 서로를 해치려고 했다. 그런데 당시 황제였던 원제 소역이 서위의 군대에게 잡혀 죽자 후계를 두고 대립하게 된다. 진패선은 원제의 아홉 번째 아들 소방지를 밀었다. 한편, 왕승변은 예전에 동위와의 전투에서 패하고 사로잡혔던 무제 소연의 조카 소연명, 즉 소방지의 육촌 아저씨를 밀었는데 결국 세력이 더 강한 진패선은 소방지를 즉위시키니 그가 경제가 되었다. 그러자 왕승변은 [[북제]]의 군사를 끌어들이려다가 진패선에게 살해당하고 북제의 군대는 양나라의 백성들의 열렬한 지원에 힘입어 패퇴하고 말았다. [[계획대로|정해진 형식에 따라]] 소방지는 진패선에게 선양하니 진패선은 진나라를 세웠다. 일단 진패선은 559년에 재위 3년 만에 병사하고 만안릉에 안장된다. 그러다가 정확히 30년 후인 589년에 일이 터진다. 원래 죽은 왕승변의 가솔은 북제에 투항했는데 북제는 서위의 제위를 얻은 [[북주]]에게 멸망했다. 북주는 [[수문제]] 양견에게 멸망하고 수나라가 589년에 진나라를 멸하고 천하를 통일할 때 왕승변의 아들 왕반은 장강을 건너와 진패선의 무덤을 파헤쳐 재물을 취하고 관을 부수고 시신을 수백 대 매질한 다음 그 시신을 불태우고 그 재를 물에 섞어 마셨다. 섬뜩한 것은 이전에 후경도 이렇게 죽음을 당했다는 것. 어쨌든 현재 옛 진나라의 수도였던 현재 남경 북쪽에 가보면 만안릉 유지가 남아있는데 바로 그때 왕반이 파헤쳐 놓은 빈 무덤 터다. 이런식의 시체훼손이 공식 형벌로 된 경우로 [[부관참시]]가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