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궁병 (문단 편집) == 궁병의 역사 == [[고대]]~[[근세]]까지의 전장에서 보병의 엄호를 받으며 멀리서 적군을 무력화시키는 역할을 맡았다. 비슷한 역할로 [[쇠뇌]]를 쓰는 [[노병]], [[투창]]병, [[돌팔매]] 부대 등도 존재했지만 세계사적으로 궁병이 원거리 공격 병과로서 가장 보편적이었다. 궁병은 아주 먼 거리에서 먼저 공격할 수 있다는 막대한 장점 때문에 문화권을 막론하고 기본적으로 징집했던 병과다. 그러나 궁병만으론 전투를 이길 수 없었기 때문에 주력으로 쓰이지는 않았다. 갑옷을 갖춘 적을 상대로 단단한 부분을 피해 급소만 찌를 수 있는 근접무기와 달리 활은 돈 없는 병사들조차 방패 뒤에 숨으면 어찌할 방도가 없었고[* [[헤이스팅스 전투]]][* 조선군은 해결책으로 방패 틈새로 화살을 쏘아넣어 맞히는 걸 표준 교리로 삼았다. [[https://sillok.history.go.kr/id/kka_11807006_002|왜인들이 반드시 방패 사이의 두 귀로 엿보았으므로 이를 쏘아 맞힐 수 있었습니다.]]], 방어측에 비해 공격측은 동기가 부족했기 때문에[* 예로 게르만족은 관습상 40일 까지만 주군을 위해 봉사했고, 그 이상의 복무는 거부하거나 재물을 요구했다.] 불만을 가라앉히고 속전속결을 내기 위해선 근접부대를 투입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궁병은 공성전에 특히 유용했다. 공성전에선 기병은 쓸모가 떨어졌고[* 물론 기병이 성벽을 돌파하는 경우가 아예 없던 것은 아니었다. 성벽 앞에 흙주머니를 잔뜩 던져 언덕을 만들어서 타고 올라가거나, 말이 오를 수 있는 거대한 사다리차를 만들어 올라가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기병이 아닌 보병만 상대하면 되는데 야전과 달리 성벽의 존재가 적의 접근을 차단해주고, 때에 따라서 역공세를 취하게 될 때에도 높은 곳이 확보된 상태이니 투사무기의 사정거리가 크게 늘어나기 때문에 어느 때보다 궁병의 활용도가 높았다. 궁술의 난이도 때문에 궁병을 양성하는게 힘들었다는 오해가 널리 퍼져있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적이 방진을 짜고 있다면 평소엔 그냥 빗나가거나 방어구에 막히고 말았을 화살이 아무렇게나 쏴도 재수없는 누군가의 미처 방어구가 가려주지 못하는 곳에 우연히 적중하는 빈도가 올라가기 때문에 적중률을 높이는 훈련을 할 필요가 없었다. 유목민족은 [[스웜 전술]]로 대표되는 궁기병을 적극적으로 사용하여 야전에선 무적을 자랑하던 시절도 있었는데, 말 탄 주몽이 매의 눈으로 저격한게 아닌, 20m 근방의 초근접거리까지 접근한 후 아무나 맞아라 식으로 쏜 것이다. 근접 전투의 경우 상대보다 실력이 열등하면 압도당하기에 한 사람 몫을 하기 위한 기준치가 높은 편이지만 궁술을 비롯한 원거리 무기는 기본적인 수준만 충족한다면 한 사람 몫을 충분히 해낼 수 있다. 익히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는 '저격'능력은 별로 필요로 하지도, 바라지도 않았고, 그게 가능한 사람은 병사가 아니라 무관으로서 종사하거나 [[척후병]] 이었지 일반 징집병은 농사짓기도 바빴다. 문화권에 따라 무장 수준이 낮고 경무장한 비율이 높을수록 궁병의 취급이 좋았다. 십자군 전쟁 기록을 보면 사슬갑옷을 입은 보병을 투르크식 활로도 절대 죽일 수 없었다는 기록이 나오지만 고온다습한 기후상 중무장이 기동력을 제약하기 쉬워 경무장 병력이 다수였던 중세 일본에서는 부상자의 8할이 활에 의해 발생했다. 서양에선 갑옷이 기형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했고, 끝내 일반적인 활로는 중무장한 기사를 뚫을 수 없는 사태까지 이르자 연사력을 대폭 희생하는 대신 위력을 높인 석궁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석궁이 궁보다 무조건 우월한 것은 아니라, 그 유명한 [[제노바 석궁병]]도 [[파비스]]가 없으면 장궁한테 연사력에서 밀려 개박살 나 [[크레시 전투]]같은 참사가 나기도 했다. 하지만 석궁조차도 사슬갑옷 정도가 한계였고, 장다름 등 흔히 연상되는 중세 말 서양의 풀 플레이트 갑옷으로 말까지 중무장한 기병들의 판금 갑옷을 뚫을 수 없어 도태되어 가던 도중 화승총의 등장과 함께 비효율적인 전신 무장은 도태되고 급소만 탄탄하게 가린 무장이 트렌드가 되자 이 틈새시장 속에서 총과 함께 아직 현역으로 굴러가긴 했다. 이후 총검이 개발되고 총이 양산되기 시작하여 총이 장궁 하나와 가격이 비슷한 사태까지 이르자 파이크맨과 궁수 역할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전열보병]]에게 자리를 완전히 내주고 역사속으로 사라진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