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권위주의/병폐/대한민국 (문단 편집) ==== [[정병섭군 자살사건]] 이후 유해만화 낙인 ==== 1961년 [[만화 검열제]]의 전신이 되는 [[http://www.komacon.kr/dmk/manhwazine/zine_view.asp?cateNum=414_8&Tag=&seq=967&nowPage=17&srh_fld=&srh_txt=|검열 시작]], 1967년 [[합동출판사]] 설립, 1968년에 [[만화 검열제]]가 명문화되고 난 뒤 1972년엔 [[정병섭군 자살사건]]이 터지면서 설상가상으로 '만화는 유해한 것' 이란 딱지가 붙어 '''문화로서의 대우를 제대로 상실해 버렸다.''' 사회 저명인사들도 한 목소리로 만화를 맹비난했고 언론 또한 만화의 공상(空想)적인 내용이나 아동·청소년에 대한 만화대본소의 유해성을 집중적으로 보도했으며 정병섭 군이 다니던 신설국민학교를 중심으로 학교별로 궐기대회를 벌여 '절대로 만화가게에 가지 않는다', '만화 보는 돈으로 어린이 저금을 한다'는 등의 결의문 아래 만화책을 모아놓고 불태웠다. [[정병섭군 자살사건]] 이후 경찰은 시내 만화대본업소 517개를 수색하여 '불량만화' 라고 분류한 20,440여 권을 수거해 불태웠으며 10원 내지 20원을 받고 TV를 보여주거나 떡볶이 등의 음식물을 판매한 대본소 주인들은 공연법 위반 내지 식품위생법 위반 혐의로 총 70여명이 즉심에 넘겨졌다. 또한 만화 창작과 관련된 69명이 고발 조치되었고 국내 58개의 만화 출판사 중 절반 이상이 등록 취소되었다. 심지어는 만화대본업소를 정리하고 쌀집을 운영하던 사람도 아이들의 증언에 의해 경찰에 연행되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사건도 사건이지만 그 이후 형성된, 만화 전반을 멸시하였던 인식이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 이 사건 이후 오랫동안 자발적으로 만화를 욕하고 경시하는 문화가 지속되었고 그로 인해 만화 산업 자체가 상당 부분 몰락하였기 때문이다. 2000년대 이후 뒤늦게나마 만화를 문화예술로 대우해주고 훌륭한 만화를 발굴하려는 상황과 대조해보면 그야말로 어이없는 촌극이었다. 그 후 그때까지[* 억압이 없었던 때는 61년 검열이 시작되기 이전까지다. 67~68년부터 과도한 [[만화 검열제|만화규제]]와 독점([[합동출판]])이 시작된 이후엔 저질 만화가 양산되며 이미지도 그리 좋지 않았다.]만 해도 비슷한 라인이었던 한국/일본 간의 만화산업 간극이 절망적일 정도로 벌어졌고 제대로 된 발전 흐름을 타지 못한 한국은 한동안 만화에서나 그림에서나 '''한국 고유의 그림체와 만화 연출'''자체가 닿지 않는 환상 속의 존재가 되어 어떤 그림을 그려도 제대로 발전되고 영역을 확장한 일본 만화의 열화 카피로밖엔 취급받지 못하게 되었다. 이는 전혀 새로운 시장인 [[온라인 게임]][* 농담이 아니라 국내 게임산업에서 발전되거나 확립된 그림체가 만화 쪽에까지 영향을 주기도 했다. 예를 들어 제대로 컬러링 된 그림의 양산은 만화나 애니메이션 쪽보단 온라인 게임 일러스트레이션 쪽에서 시작된 것.], [[웹툰]] 영역을 먼저 개척하면서 조금이나마 해소된다. 본 사건은 만화 뿐만 아니라 애니메이션에도 악영향을 미쳐 한동안 MBC의 《뽀빠이》를 제외하고는 애니메이션이 모두 종영되기도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