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규므리 (문단 편집) = 역사 = 본래 이름은 쿠마이리(Կումայրի, Kumayri)였다. 현 명칭인 규므리는 이 쿠마이리가 변형된 명칭이다. 기원전 3000년 전부터 사람이 거주했던 곳이었고, 기원전 8세기 [[우라르투 왕국]]의 비문 유적에도 이름이 남겨진 역사깊은 도시이다. 이후 수세기 동안 여러 [[아르메니아 왕국|아르메니아계 왕국]]이 차지하던 곳이었다. 6세기 [[우마이야 왕조]]의 침략으로 이슬람화가 진행되었으나, 9세기 경 [[압바스 왕조]]의 쇠퇴로 말미암아 이슬람 세력을 물리치고 근처 바그라투니 아르메니아 왕국의 수도였던 [[아니 고고학 유적지|아니]] 주변의 정착촌으로 발전하였다. 그러나 10세기 [[셀주크 투르크]]의 침략, 12세기 몽골의 침략으로 아니가 황폐화되면서 같이 몰락하였다. 이후 15세기 [[사파비 제국]]에 의해 동부 아르메니아 지역과 함께 점령되었으며, 이후 [[카자르 왕조]] 시기 에리반 칸국에 속하였다. 1804년 [[러시아 제국]]-[[페르시아]] 간 전쟁 당시 가장 먼저 탈취된 도시가 쿠마이리였고, 1814년 굴리스탄 조약으로 확고히 러시아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1837년 [[니콜라이 1세]]가 황후 [[프로이센의 샤를로테|알렉산드라 표도로브나]][* [[프로이센 왕국|프로이센]]의 샤를로테.]의 이름을 따 쿠마이리를 알렉산드로폴(Александрополь, 아르메니아어 Ալեքսանդրապոլի)로 개칭하였다. 러시아 제국은 남캅카스에서 [[오스만 제국]]으로 진출하는 길목에 있는 이 도시를 중요하게 생각하였다. 1830년대 시기부터 계속된 [[러시아-튀르크 전쟁]]에 대비하여 규므리에는 러시아 군의 군사 기지가 건설되었다.[* 러시아 제국 시기 세워진 대표적인 건축물로는 시가지 서쪽에 위치한 세브 베르드(Սև բերդ, 검은 요새라는 뜻)가 있다.] 또한 이 곳에 캅카스와 오스만 제국의 영토였던 [[카르스]], 에리반 현(Эриванская губерния)의 중심도시 예레반을 연결하는 철도역이 1899년에 들어서면서 교통의 중추도시가 되었고, 오스만 제국의 [[아르메니아인 대학살]]을 피해 온 아르메니아인들이 몰리면서 도시 규모가 빠르게 성장하였다. 1897년 규므리의 인구는 3만명을 돌파하여 같은 시기 예레반 인구 2만9천명보다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또한 아제리인들의 비중이 높았던 예레반과 달리 아르메니아인의 비율이 70%를 웃돌며 예레반보다 더 큰 동부 아르메니아의 주요 도시로 기능하였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러시아 제국이 [[10월 혁명]]으로 붕괴하면서 튀르키예 국경에 위치한 규므리는 격동의 시기를 맞았다.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 이후 규므리를 점령했던 오스만군이 세계대전 종전 이후 물러나면서 신생 [[아르메니아 제1공화국]]이 이 도시를 차지했으나, [[세브르 조약]]으로 말미암은 아르메니아의 태생적인 대외갈등 및 전쟁으로 불안한 정국 속에 있었다. 결국 1920년 11월 [[튀르키예군]]에 의해 점령되고 튀르키예-아르메니아 간 알렉산드로폴 조약으로 11개월간 튀르키예가 점거하였으나, 곧 [[소비에트 연방]]이 아르메니아 1공화국을 합병하면서, 1921년 10월 소련-튀르키예 간 조약인 카르스 조약의 결과로 소련 치하 [[아르메니아 SSR]]에 편입되었다. 1924년 알렉산드로폴은 [[블라디미르 레닌]]의 이름을 따 레니나칸(Ленинакан, 아르메니아어 Լենինական)으로 개명되었다. 이후 아르메니아 SSR의 중심 도시 기능을 예레반이 가져가긴 했으나, 여전히 소련의 대 튀르키예 교류의 최전선 도시로서 아르메니아 제2도시 위치를 확고히 유지하였다. 1984년 규므리의 인구는 22만명을 돌파하였으나, 1988년 [[아르메니아 대지진]]으로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를 참조. 소련 붕괴의 또 다른 계기를 제공한 이 지진으로 인해 규므리는 재건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파괴되었다. 현재도 규므리 시내 곳곳에 재건되지 못하고 파괴된 채로 남아있는 건물들이 남아있을 정도. 지진으로 인해 10만명의 인구가 증발하여 1989년에는 12만명의 인구만이 남았다. 소련 붕괴 이후 1992년 레니나칸은 현 명칭인 규므리로 환원되었다. 2001년 기준 인구가 15만명으로 소폭 증가하였으나 다시 인구가 감소하여 2011년 기준으로 121,976명의 인구가 거주하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