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그라티아누스 (문단 편집) === 로마제국 서방의 황제 === 서기 [[375년]] 11월, [[발렌티니아누스 1세]]가 [[아우구스타 트레베로룸]]에서 급사했다. 이때 아버지 곁을 따르고 있던 그라티아누스는 곧 [[로마 황제|황제]]로 추대되었다. 그런데 [[판노니아]]에서 아쿼티우스와 막시미우스 장군들이 그라티아누스의 동생 [[발렌티니아누스 2세]]를 황제로 추대했다. 그라티아누스는 내란이 발생할 지도 모르는 이 상황을 현명하게 대처했다. 그는 [[이탈리아]], [[일리리쿰]], [[북아프리카]]를 [[메디올라눔]]에 자리잡은 발렌티니아누스 2세의 영역으로 삼는 데 동의했고, 자신은 [[갈리아]], [[히스파니아]], [[브리타니아]]를 맡았다. 그러면서도 발렌티니아누스 2세가 아직 어리다는 이유로 그가 맡은 영역에서도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때 그의 나이는 불과 16세였지만, 그는 놀랍도록 빠른 속도로 제국 서방을 장악했고 제국 동방의 황제이자 삼촌인 [[발렌스]]에게도 인정받았다. 이후 그라티아누스는 [[라인 강]]을 도하하여 갈리아에 쳐들어온 [[게르만족]]과 전쟁을 벌여 수차례 승전을 거뒀다. 그러던 [[378년]] 초 [[고트족]]의 반란으로 곤경에 빠진 발렌스로부터 구원 요청이 들어오자 [[프랑크족]] 출신의 부하 프리게리두스, 리코메르 등에게 선봉대를 맡겨 동방으로 파견해 고트족을 저지하게 한 후, 자신은 본대를 이끌고 뒤따라가기로 했다. 그런데 그가 판노니아 일대로 정예부대를 진출시키던 중 라인 강 유역에 거주하던 [[알레만니족]]이 침공했다는 소식이 들어왔다. 이에 그라티아누스는 군대를 돌려 아르겐타리아 근교에서 프랑크족과 연합해 알레만니족을 격파했다. 이후 그는 라인 강 상류를 건너 알레만니족의 영역으로 진입해 촌락을 불태우고 수많은 알레만니족 전사들을 죽이거나 포로로 잡았다. 하지만 그러는 동안 발렌스를 제 때에 구원하지 못하게 되었고, 이는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했다. 378년 8월 9일, 그라티아누스가 구원하러 오는 걸 기다리지 않고 단독으로 고트족과 싸우기로 결심한 발렌스는 [[하드리아노폴리스 전투|하드리아노폴리스에서 고트족과 맞붙었으나 전 병력의 3분의 2가 전사하는 참패를 당하고 전사했다.]] 그라티아누스는 뒤늦게 [[발칸 반도]]로 [[로마군|군대]]를 이동시켰으나 이미 상황은 악화될 대로 악화되었다. [[다뉴브 강]] 남부 일대는 고트족 무리들에게 파괴되었고 [[로마 제국|제국]]의 권위와 군사적 위신은 땅바닥에 떨어졌다. 게다가 그가 갈리아를 떠난 직후 게르만 종족들이 또다시 갈리아 침략을 계획하고 있다는 급보가 전해졌다. 이에 그라티아누스는 혼자서는 이 난국을 감당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특단의 조치를 내린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