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극동국제군사재판 (문단 편집) == 내용 == 극동국제군사재판소는 [[연합군 점령하 일본|연합국 최고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 [[미합중국 육군|육군]] [[원수(계급)|원수]]의 <[[http://imtfe.law.virginia.edu/collections/carrington-williams/3/2/special-proclamation-establishment-imtfe|특별선언]]>과 동 사령부 <일반명령 제1호>로 공포된 <[[http://imtfe.law.virginia.edu/collections/morgan/1/4/charter-international-military-tribunal-far-east-19-january-1946|극동국제재판소 헌장]]>에 따라 [[1946년]] [[1월 19일]]에 [[도쿄]]에 설치되었다. 이후 '''[[미국]], [[영국]], [[중화민국]], [[소련]], [[캐나다 자치령]],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프랑스 제4공화국|프랑스]], [[인도 제국]], [[필리핀 제3공화국|필리핀]], [[네덜란드]]'''에서 12명의 [[재판관]]이 임명되어 [[일본]] 전범자 [[도조 히데키]] 외 28명을 [[재판(법률)|재판]]했다. 재판이 진행된 장소는 [[일본육군사관학교]]였던 [[건물]]의 2층 대강당이었다.[* 구 [[육군]]사관학교가 있었던 이치가야 일대는 현재까지도 [[방위성]]의 주요 시설이 자리하고 있다. 1980년대 후반, 당시 방위청의 이전계획을 이유로 구 육사건물을 철거하려는 계획이 세워졌는데, '''좌익'''은 과거를 기억하고 반성하려는 의미에서, '''우익'''은 [[일본의 우경화|당연히 뻔한 이유로]] 모두 해당 건물의 보존운동을 일으켰다. 그 결과 해당 건물을 해체하고 몇가지 역사적 주요 시설만 추려서 주둔지 내에 축소 이전하는 선에서 마무리되었다. 현재는 이치가야 방위성 주둔지 내 '1호관'으로 명명되어 있다. 당시 전범재판이 있었던 대강당 역시 그대로 [[복원]]하여 [[보존]]하고 있으며, 방위성 견학시 이곳 역시 돌아볼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