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극동국제군사재판 (문단 편집) == 결과 == 1946년 5월에 개정하여 1948년[* 2년 6개월이 넘었다. 정확히는 '''2년 6개월 15일'''.]에 판결을 내렸는데, 7명이 사형(교수형), 16명이 종신형, 2명이 유기금고형을 선고받았으며, 2명은 판결 전 사망, 1명([[오카와 슈메이]])은 [[매독]]에 의한 정신이상으로 소추면제되었다. [[쇼와 덴노]]도 기소하자는 의견이 있었지만 그럴 경우, [[일본]]의 [[민심]]이 돌아설까 우려하여 실질적인 권한을 박탈하고, '''[[인간선언]]'''을 이끌어내는 대신 칭호는 남겨두었다. 또다른 이유로는 [[천황]]의 유죄를 입증할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위의 28명의 재판 결과로 알 수 있듯 [[사형]]보다 [[종신형]]이 많다. 전쟁 범죄로 천황을 기소하여 만약 범죄를 입증하지 못하거나 사형을 이끌어내지 못하면, 오히려 이를 근거로 재판의 애매모호함이 드러나게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후 천황([[쇼와 덴노]], [[아키히토]], [[나루히토]])들은 전범들을 참배하는 일본 정치인들과는 달리 '''[[야스쿠니 신사]]에 전혀 출입하지 않고 있다'''.그래도 일본 황실은 최소한의 양심은 지킨셈.[* 물론 진짜로 황실이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거나 전범들을 옹호했다면 '''다른 아시아 국가들에게 선전포고 당해도 싼 미친짓''' 이기에 몸을 사린것도 있다. ]] 나치 전범에 대한 [[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과 달리 극동국제군사재판은 '''관련자들의 처벌과 색출이 철저하지 않았다'''. 몇몇 악인들이 법의 심판을 피해가고, 반대로 다소 억울한 인물이 사형당하는 등 공정하지 못한 재판이었다. 인도 출신의 [[라다비노드 팔]] 판사가 전원 무죄를 주장하기도 했는데, 자세한 것은 문서 참고. '''[[냉전]] 체제 격화로 졸속 처리된 측면도 적지 않다'''. '[[철의 장막]]'으로 상징되는 냉전 체제와 '[[죽의 장막]]'으로 상징되는 동아시아 지역 질서의 위협은 일본의 지정학적 가치를 동아시아의 반공 보루로 격상시켰다. 이 시기에 들어 [[SCAP]]의 노선 또한 급변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미국은 일본에게 더 이상 짐을 지우지 않고, 보통국가로 되돌리려 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부실한 전후 처리가 '일본은 독일과 다르다!'라고 주장하는 [[일본 극우사관]]의 원인을 제공했다. 특히 [[중화민국]]은 일본에 대한 복수보다 중국공산당을 토벌하는 게 먼저였고('''제2차 국공내전'''), 현재처럼 당시에도 미국과 굉장히 친밀한 국가였기에 딱히 도쿄 재판에 신경쓰지 않고, 그냥 미국이 주장하는 것에 따랐다고 한다. 한편 [[731 부대]] 일원들은 일본에 있었으므로 이 재판에 회부되어야 했으나 인체실험 데이터를 미국에 넘겨주는 사법거래를 통해 빠져나간 사례도 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이 재판에 임팔 작전의 무능력한 지휘관인 [[무타구치 렌야]]가 피고석에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행적을 하나하나 깔 때마다 검사 측과 판사 측은 엄청나게 비웃었고, 그와 반대로 피고석에 있었던 전범들의 얼굴은 굳어졌다고 전해진다. 그 후 그는 바로 [[불기소처분]], 싱가포르 군사법원으로 송치되어 증거불충분으로 석방되기 까지 2년을 살게 된다.[* 불기소 처분되어서 다른 군사법원으로 송치된 유일한 사례였다. [[혼마 마사하루]]처럼 이 기간 동안 대접이 '''매우 좋았다'''고 한다.] 이러한 재판은 세계적으로 선례가 없었기 때문에 오늘날의 시점에서는 법적 문제가 많아 보인다. 그중 하나가 명백히 당사국인 승전국이 다른 당사국인 패전국을 심판했다는 것이다. 다만 소급입법 측면에서의 비판은 오늘날의 입장에서 타당하지 않다. 이 사건에서도 그렇지만 각국의 중요한 정치적 죄과에 따른 심판[* 프랑스의 부역자 청산, 남미의 독재정권 청산, 대한민국의 군사독재 및 친일부역자 관련 사안 등.]에 관해서는 그러한 사건이 터진 시점에서는 처벌이 불가능하고, 그 처벌이 공익상 필요하다고 보이므로 예외적으로 소급입법을 인정하는 게 널리 퍼졌기 때문이다. 이 재판을 다룬 매체로는 2006년 [[중국]]에서 당시 중국 측 재판관을 맡은 메이루아오(梅汝璈)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 '''<동경심판>'''(東京審判), 캐나다의 방송사[* Don Carmody Television of Canada]와 네덜란드의 제작사[* FATT Productions of the Netherlands]가 공동 제작하고 2016~2017년에 걸쳐 [[NHK]]가 지원/방송한 [[미니 시리즈]](4부작) ''''''이 있다. NHK가 돈을 댔으나 [[일본인]] 중에는 주인공으로 삼을 만한 사람이 없었기에, 소수 의견을 피력했던 네덜란드의 베르트 뢸링이 주인공격 인물로 묘사된다. 한국에서는 [[넷플릭스]]로 볼 수 있다. 크게 알려지진 않았지만 [[징용]], [[징병]]된 [[조선]]인들이 [[전범]]으로 [[기소]]되어 [[처형]]당한 일도 있었다. [[http://news.kukmin.tv/news/articleView.html?idxno=3417|전범이 된 포로 감시원들]]. B, C 전범들도 바다에 유골를 뿌리라는 지시를 했다. [[https://www.yna.co.kr/view/AKR20210723093700073|관련 기사]].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