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근육소녀대 (문단 편집) ==== 키츠타카 후미히코(橘高文彦) ==== 리드[[기타리스트|기타]], [[1965년]] [[12월 27일]]생, [[오사카]] 출신 1989년-1999년, 일시 탈퇴 후 2006년 7월 재가입하여 현재까지 재적중. 1984년 헤비메탈 밴드 'AROUGE'로 메이저 데뷔한 이후, 재적해 있던 밴드가 해산하고 난 뒤 3년 후인 1989년부터 미시바 사토시를 대체하는 형태로 근소에 가입. "미시바군과 같이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가 관둬버려서"라고 후에 본인이 가입 동기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애칭은 [[후밍]](フーミン)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중성적인 [[고스로리]]계열의 의상과 메이크를 고수하고 있다. 근육소녀대 활동 당시에도 라이브 중 메이크가 망가지면 재빨리 대기실에 가서 메이크를 고치고 왔다고 한다. 본인 왈, 평소의 키츠타카에서 기타리스트의 키츠타카로 바뀌는 데에는 '''3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연주 스타일은 (본인의 표현을 빌리자면) '성을 쌓는' 격렬하면서도 짜임새 있는 기타솔로[* 그래서 [[니코동]] 등에서는 키츠타카의 기타솔로 부분에 '''Now Building..'''이라는 자막이 붙기도 한다.]가 특징. 우치다 유이치로가 근소의 프로그레시브함, 오켄이 근소의 정신세계를 대표한다면 후미히코는 90년대 근소 음악성의 메인이었던 하드록/헤비메탈을 대표하는 존재로, 드라마틱하면서도 서정적인 악곡을 쓰는 편이다. 밴드의 실질적인 음악 프로듀서이기도 하다. 오켄왈, '''"내가 노래를 엄청나게 잘하고, 키츠타카가 리더였다면 근소는 메탈 밴드가 되었을거다."''' 메인기타는 [[깁슨]]의 [[플라잉브이]]와 카파리즌의 FVK. 한때 오켄처럼 근소로써의 활동에 대한 스트레스와 노이로제가 겹쳐서 인터뷰나 레코딩에 엄청난 지각을 하거나 아예 나타나지 않는 등 문제활동을 일삼던 시절이 있었다. 그 결과 정신적으로도 피폐해져서, 다른 맴버들에게 민폐를 끼칠 수는 없으니 탈퇴하는게 낫겠다는 생각도 했다고. 하지만 다른 멤버들의 함께 열심히 해보자는 격려에 끝까지 근소에 남게 되었다고 한다. 이렇듯 지각 상습범이었지만, 오켄에 의하면 키츠타카는 근소 부활 후에는 어엿한 어른(...)이 되었다고 한다. 정통 록커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자유분방한 근육소녀대 맴버들과 대조적으로 자신이 록커라는 자부심이 매우 강한 멤버. 평소에도 "록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자문자답을 하고, 맴버들에게도 진지하게 록에 대해 논하곤 한다고. 한 일화로 오켄과 웃치가 회식자리에서 만화 [[아스트로 구단]]에 대해 뜨거운 토크를 하고 있으니 만취한 키츠타카가 눈물을 펑펑 흘리면서 '''"너희들, 록커잖아!! 록커면 록 얘기를 좀 하라고!!!"'''라고 분노를 터뜨렸다고 한다. 그리고 그 후 라이브 대기실에서 키츠타카가 웃치와 [[패미컴]]토크를 하고 있을 때 오켄이 똑같은 대사를 쳐서 복수했다고 한다(...) 이외에도 라이브때마다 오켄이 인형을 휘두르는 퍼포먼스를 하자 키츠타카가 공연 후 "그거 록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데, 관두면 안될까?"라고 진지하게 말했더니 오켄은 '''"이게 나의 록이야"'''라며 반문했다고 한다. 그 후 키츠타카가 오켄한테 다른 인형을 선물하며 "이번 공연때는 이걸 휘둘러봐"라고 했다는 훈훈한(?) 일화가 있다. 여담으로 밴드내에서 유일한 '''기혼자'''. 아들이 3명이나 있다. 게다가 1999년에 펑키 스에요시의 주도로 결성한 [[X.Y.Z.→A]]의 멤버이기도 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