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근육조선/역사 (문단 편집) === 러시아 제국 → 러시아 왕국/소련 === 원 역사대로 시베리아에 진출하였으나, [[연해주]] 지역은 조선이 꽉 틀어쥐고 있었기 때문에 [[캄차카 지방]] 개발권과 경원항([[블라디보스토크]]) 지역의 사용권을 교환하는 거래로 우호 관계를 맺는다. 로마노프 왕가와 대한제국 황가 간 혼인도 이루어져, [[타티아나 니콜라예브나 로마노바]]가 조선의 세자비로 들어왔다고 한다.[* 2부 외전에서 대양도나 미주에서 왕비를 들이는 일은 있었지만 대한제국은 유럽과 피를 섞지 않기로 유명했다고 하며 이는 처음이라고 한다.] 러시아 제국은 원래 역사에서 러일전쟁 패배, 과도한 공업화와 수출로 인한 농업 정책 실패, 1차 대전으로 인한 재정 불안정화 때문에 [[러시아 혁명]]이 일어났으나, 근육조선 세계관에서 일본은 조선과의 전쟁에서 진 이후 빌빌거리는 상황이라 러일전쟁 자체가 일어나지 않고 조선에서 엄청난 식량을 수입하면서 이런 문제들이 다소 해결되었다. 하지만 부패한 귀족들 때문에 식량 대신 사치품의 수입량이 늘어나 식량 부족 현상이 재발된 상황에서 [[니콜라이 2세]]가 자존심 때문에 [[시베리아 횡단철도]]에 엄청난 투자를 하면서 생긴 적자가 결정타가 되어 혁명이 일어나 버리고, [[적백내전]]에서 패배한 황실은 시베리아 동부로 피난와 러시아 왕국을 세운다.[* 원래 러시아는 제국이었으나 황제 니콜라이 2세가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잃어버렸으니 제국이라 할 수 없다며 국명을 격하시켰고, 자기 대에서 제국을 잃었다는 상실감으로 술독에 빠졌다.] 원래 대한제국과 우호 관계였던 국가이고 동시베리아 지역은 조선의 영향이 매우 큰 지역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로, 대한제국이 아니었다면 로마노프 황가는 분노한 시베리아 원주민들에게 맞아죽었을 거라고 한다. 또한 현대에도 대부분의 거주민이 시베리아 원주민이거나 대한 공화국 출신이라는 듯하다. 소련의 경우 구체제 황실을 옹호하는 대한제국을 응징하고 싶어했으나, 국력의 한계로 인해 실패했다고 한다.[* 가뜩이나 대한제국 자체가 태평양 지역을 죄다 접수한 거대한 제국인데, 러시아 왕가가 대한 제국의 비호로 시베리아 동부 지역에 아직 살아남아 있었기 때문에 원 역사보다 소련의 힘도 약했다.] 이후 2차 세계대전에서 벌인 [[카틴 학살]]이 1947년에 발견되자, 세계 최강국 중 하나이자 인권 문제로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이력이 있는 대한 공화국의 눈치를 보느라 공산주의 세력을 크게 확대하지는 못했다.[* [[스탈린]]은 카틴 학살이 폭로된 뒤 점령중이던 동독 지역을 반환하고 은거했다고 한다. 현대 시점에서도 종전 전에 학살이 폭로되어서 스탈린도 [[무솔리니]]처럼 전범으로 처형당했어야 했다며 대한 공화국 사람들이 이를 갈은 걸 봐선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폭로되어서 망정이지 종전 전에 폭로되었다면 소련의 승전국 지위는 고사하고 스탈린의 목이 날아갔을 정도였고, 스탈린 본인도 2차 세계대전 당시에 투입된 대한 공화국의 압도적인 군사력과 소련군에게 퍼줄 정도로 넘쳐나는 보급 역량을 체감한 상태였던지라 혹여라도 대한 공화국을 자극할까 봐 팽창노선이고 뭐고 다 집어치우고 숨은 듯하다.] 특히 동아시아에서는 중국이 분열되어 3개국 중 1개국만 공산주의 국가가 되었고, 일본은 원역사 한국처럼 절반만 공산주의 분단국가였다가 그나마도 1963년에 자유진영 측이 통일하였기 때문에 아시아 지역에서의 세력도 크지 않은 상황. 덕분에 냉전이 원 역사처럼 크게 일어나지는 않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러느라 체제 모순이 덜 자극된 모양인지 소련이 해체되지 않고 현대까지 남아있다. 러시아 왕국에서는 [[아나스타시야 니콜라예브나 여대공|외교부장관 아나스타샤]]가 슈비브지크(작은 악마)라는 별명대로 상대(특히 소련)를 외교적으로 완전 농락하는 수준에 이른 모양. 외전의 댓글에 따르면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복선화는 대한이 해 줬으니 우리쪽 복선화는 소련이 해 달라'''라고 요구했고, 소련에서는 이에 당연히 반대하려 했으나 아나스타샤가 카틴 학살을 들먹이자 바로 알겠다고 꼬리를 내린 모양이다(...). 이후 대한 공화국에 진 막대한 채무[* 한때 황족끼리 결혼까지 했던 나라였던 만큼 연 이율 1%에 상환기간 120년이라는 관대한 조건의 채무였다고 한다.]를 갚기 위해 왕가를 따라 이주한 해군의 함선들을 어선으로 개장하고[* 대한 공화국의 보호를 받기에 군사력을 유지할 필요가 없다며 해군 함선들을 전부 다 어선으로 개장했다고 한다. 이때 [[강구트급]]도 게잡이 어선으로 개장되었는데 생전에 강구트급 개장에 반대한 키릴 대공의 묘비에 영하 15도의 날씨에도 얼지 않은 [[피눈물|붉은색 이슬]]이 맺혔다고 한다. 이때 뜯어낸 함포 중 130mm 부포는 후에 대한 공화국에 양도되어 41식 전차의 주포로 채택되었다.] 베링해 어업에 뛰어들었으며 현대 시점에서도 어업을 주력으로 삼고 있는 듯하다. 현대 시점에서는 구 대한제국배 스포츠 대회에 러시아가 참가하는 걸 보아 사실상 대한 공화국의 일부로 취급되는 듯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