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근육조선/역사 (문단 편집) === 명 === 사실 수양대군은 [[토목의 변]]을 어찌어찌 막아보려고 했으나, 조선이 조공으로 바친 시험생산용 보총 때문에 근거없는 자신감을 얻은 명이 예상보다 빠르게 몽골을 도발하면서 결국 역사보다 1년 일찍 토목의 변이 일어나게 된다. 조선은 전력 은폐 목적으로 보총의 초기 개발품을 진상하고 이 과정에서 얻은 제작 노하우로 기술 개선을 거쳐 후기 보총을 완성하는데, 이런 개발 노하우가 전무한 명에서는 강철이 아깝다고 청동으로 찍어내다 보니 실전에서 사용하기 힘들 정도로 무겁게 만들었고, 비리로 인해 실사격 훈련은 커녕 사용방법 교육조차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런 주제에 엄청난 생산력으로 미친듯이 만들어 국경지대까지 여기저기 뿌려버리니 에센 타이시가 이게 화약무기라는 것을 깨닫고 대응훈련[* 처음에는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에 공격하거나 말의 귀를 막을 생각도 했지만 - 말의 귀를 막으면 주인 명령을 듣지도 못할 테고, 비바람 몰아치는 날이 흔한 것도 아니거니와 성에 농성을 할 터여서 고민하다가, 물에 불린 대나무를 불에 넣어 터트리면 포화만큼은 아니어도 큰 소리가 나니 이걸 이용해 말이 폭음에 익숙해져서 겁을 먹지 않도록 훈련을 시킨다.]을 하는 바람에, 결국 수양대군의 의도와는 반대로 보총 때문에 더 일찍 일어난 것이다. 토목의 변 이후 명은 요동을 자신의 세력권으로 편입시키려 대대적인 사민정책을 펼치고, 대신 요동에 살던 여진족은 모조리 몰아낸다. 그러나 정통제의 어설픈 배려 때문에 남방에서 농업은커녕 장사나 공업으로 먹고 살다가 억지로 이주해 온 사람들이 적응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대규모 수해까지 입자 서유정이 어떻게든 붙잡아온 행정 체제가 붕괴해버린다. 게다가 서유정의 후임 관료와 조정의 환관들은 입을 모아 사태를 은폐하고 오히려 주민들을 죽여 여진이나 몽골 도적이라고 수급을 보낸다.[* 그래도 양심은 남아 있었던 서유정은 이런 사태에 반대했지만, 묵인하지 않으면 요동 치수를 실패한 건을 보고해 백각형을 받게 하겠다는 협박에 굴복해버린다.] 결국 남은 주민들은 살아남기 위해 정말로 도적떼로 변해 가고, 일본에서 끌려온 칼질밖에 모르던 포로들까지 더해지자 요동은 완전히 서로가 서로를 잡아먹는 아귀다툼의 생지옥이 돼 버린다. 세월이 흐른 2부 시점에서 요동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도덕이나 양심 따위는 알 바 아닌[* 우연히 퍼진 우역(구제역)의 전염에 대한 지식을, 우역을 막는 데 사용하는 게 아니라 다른 나라에 퍼트려 자기 소 값을 올리려고 할 정도다. 심지어 잠깐 지나가듯 언급된 말이지만 늙은 부모를 산에 내다버리는 [[고려장]] 비슷한 정신나간 행위가 실제로 존재하는 듯.] 도적의 땅이 되어버렸다. 중국 본토에서는 관리들의 고질적인 부패로 인해 날이 지날수록 국가 체계가 썩어들어가고 있다. 그래서 조선에서는 겉으로는 상국 대우를 해 주지만 왕실은 물론 관료들까지 '''두들겨 맞는 돼지새끼'''라고 비하할 정도로 내심 업신여기고 있다. 그러나 부자가 망해도 삼년은 간다고 넓은 영토와 인구수에서 나오는 힘은 여전하고, 명목상으로는 여전히 중화질서의 상국이기 때문에 조선이 어느 정도 굽히고 들어가야 하는 상황이기도 하다. 그래서 조선에서는 명을 내부에서 분열시키고 마음대로 조종하기 위해 [[프레이저 보고서|친 조선파 관료들을 육성해 투입하는 한편 국력을 모아 결정적인 중화사상 체제의 전복 포인트를 노리고 있었다]]. 마침 황제인 만력제가 본래 역사와 같이 태업을 시작하고, 본 역사 이상으로 친 조선적 행보를 보이기 시작하며 명은 본격적 하락세를 걷게 된다. 만일 2부 시점에서 빙의자 유성룡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대기근의 영향으로 궁지에 몰린 조선이 중국 본토 점령이라는 악수를 둬서 원나라가 그러했듯 중국 문화에 그대로 흡수되는 결말이 예정되어 있었으나, 빙의자 유성룡과 예언가 이지함 덕분에 이런 결말은 뒤바뀌게 된다. 결국 에필로그 시점에서는 요동 도적이 결집한 국가인 대연, 이자성이 시안과 북경을 거점으로 세운 순, 쓰촨 지방을 기반으로 한 제, 현재의 저장/장시/푸젠/광둥에서 명맥을 유지한 남명으로 갈라졌다. 조선은 지원과 공작을 통해 이 세력들 간의 힘의 균형을 유지해 중국이 다시 통일하지 못하도록 막았으며, 남명 황실은 조선으로 망명해 춘천에 살림을 차린다.[* 이때 조선국왕은 천자자리를 이어받아 중원을 차지하는 것을 거절했다고 한다.] 춘천으로 망명온 남명 황실은 수백 년이 지나자 이름만 대명국(명나라)이지 사실상 조선이나 다름없는 상태가 되었다.[* 1부 시점의 미래에서는 조선은 중국의 일부가 되었지만 2부를 거치면서 명이 조선의 일부가 된 상황.] 명나라의 옛 중국어는 황실 인물들이 옛 전통을 지키려 --쓸데도 없는걸-- 억지로 익히는 언어가 되었고, 동지사(冬至使)는 1년에 4번 관광객이 참여해서 즐기는 관광코스가 되었으며, 황제도 애들에게 사인이나 해주는 이름만 남은 수준으로 전락했다. 사실 몇백 년간 춘천에서 살았으니 자연스럽게 현지인과 혼혈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고, 혈통을 지킨다고 근친혼만 고집했다간 유전적으로 문제 있는 자손들이 태어났을 것이니, 명 황실은 이름만 중국인일 뿐 유전적으로도 한국인이라 볼 수 있다. 본토의 남은 3개 국가들은 대한제국/일본/연방국과의 전쟁인 무신천명대전에서 패전하여 막대한 손해를 입고, 전쟁 보상금을 갚을 방법이 없어 혼란이 계속되다 결국 7갈래로 찢어져 버린다. 내몽골 자치구는 몽골로, 신장 위구르 자치구는 투르키스탄으로, 요동과 만주는 대한 공화국으로 흡수되었으며, 티베트는 독립을 유지하고, 본토는 군사 독재국가인 북부의 중화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남서부는 중화 소비에트 공화국, 남동부는 중화민국으로 갈라진 상태다. 기존의 3개국 중 순나라는 채무의 2할을 변제하고 디폴트 선언, 제나라는 프랑스로 망명, 연나라는 별 언급이 없으나 요동을 기반으로 한 국가인 만큼 대한 공화국에 흡수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중국 본토인들은 대한 공화국을 조선이라 부르며 멸시한다. 그래서 자신들끼리는 항상 티격태격하면서도, 대한 공화국과 관련된 건은 삼국이 협력한다. 대한 공화국도 이 점을 잘 알고 있어서, 2차 세계대전에 끼어들기 전에 이들 3개국의 내전을 유도하여 배후지를 안정화시키고자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