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근육조선/역사 (문단 편집) === 대만 === 조선의 이간책으로 일본 왜구들이 남경 근처까지 약탈을 나가게 되자, 골치를 썩던 명에서는 조선의 해군으로 왜구를 소탕하려 한다. 원래 명의 제안은 조선 수군을 [[항저우|항주]]에 주둔시키는 것이었으나, 해외 진출을 모색하던 조선에서는 이를 핑계로[* 오키나와로 가는 통신수단이 불안정하다는 핑계를 댔다. 물론 명의 간섭을 피할 수 있다는 게 주 이유.] 이 참에 주둔 및 개척지로서 대만, 당시 이름으로는 이주(夷洲)를 양도받게 된다. 이렇게 대만은 "대양도"[* 또는 "대남도"라는 이름이 혼용된다.]라는 이름을 얻고, 조선에서는 열대작물 재배지 및 해군 기지로 사용하게 된다. 초기에는 대만 원주민들과 마찰이 많았다. 대만 원주민들 중 고산족은 타 부족의 목을 따 오면 성인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데, 이 풍습 때문에 개척을 위해 찾아온 조선세력과 충돌이 일어났으며 그 과정에서 수풀에서 습격당해 목이 잘린 조선군이 많았던 것. 그러나 홍윤성의 계책으로 알몸에 녹색 칠을 하는 일종의 위장 전술을 도입하면서 적대적인 고산족을 무력으로 진압해 복속시켰다. 이후 시간이 지나 대양도의 조선군과 현지인 여성과의 결혼 등으로 점차 조선과 동화되면서 [[구르카]]처럼 운영되는 대만 원주민들을 징병하는 임해도감이라는 특수부대가 운용되기도 한다. 조선군 점령 지역에서는 원주민들이 사람 머리를 베어 오는 성인식을 할 수 없으니 대신 힘을 증명하기 위해 입신체비 도구를 훔쳐서 들어올리는 것으로 변질[* 성인이 무거운 물건을 들어올려 자신의 힘과 노동력을 인증받는 문화는 세계 각지에 비슷한 것이 많다. 당장 조선시대만 해도 평민들은 들돌이라는 무거운 돌을 들어올리는 것이 관례의 일부였고, 이것이 제주도식으로 변형된 민담이 '[[https://www.youtube.com/watch?v=2OWB82d-iQU|한락댁이]]'이다.]되어 소소한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하는데, 이걸 본 도감군 정범수가 '힘을 증명하는 것이 성인식 조건이라면, 아예 훈련도감처럼 빡시게 굴리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창설한 것. 이것마저도 처음에는 습성이 남아 초모에 응한 자가 넘쳐났는데, 참파에 용병으로 나설 때 전쟁의 무서움을 직접 체험하며 과열된 열기를 빼내게 된다. 그 밖에도 유황 작업 기지로 쓰이기도 한다. 작업자는 보통 일본 왜구였다가 체포당한 이들. 도망쳐 봐야 임해도감에게 잡히고, 바다로 나와 봐야 고향은 하도 멀기 때문에 나갈 수 없다고...[* 시간이 지나면서 2부 시점에서는 죽을 죄를 지은 이를 보내 거기서 유황을 캐다가 병들어 죽게 하는 식으로 실질적인 사형지로 사용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