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근초고왕(드라마) (문단 편집) == 줄거리 == [include(틀:스포일러)] || 화수 |||| 상세 || ||<^|2>1~13||'''부여준의 찬탈과 [[네토라레|NTR]]'''||341~344년|| ||||[[비류왕]]에게는 본처인 해비 해소술 소생의 태자 부여찬, 부여휘, 부여산과 후처인 진비 진사하 소생의 부여구, 부여몽이 있다. 무능한 부여찬에게 실망한 [[비류왕]]이 [[요서]]에서 소금장수로 살아가던 부여구에게 왕위를 물려주려 하자, 이에 해소술은 과거 자신의 첫사랑이었던 부여준과 영합하여 남편 비류왕을 산자고 독으로 독살해버린다. 하지만 부여준은 부여찬을 왕으로 만들어주겠다는 약속을 깨고 그 자신이 [[계왕]]으로 즉위하고, 그 대신 해소술을 자신의 왕후로 맞아들인다. 이 와중에 부여준이 진비에게 [[누명|죄를 뒤집어씌우자]] 진비는 독을 먹고 [[자살]]함으로써 자신이 모든 죄를 뒤집어쓴 채 [[근초고왕|부여구]]를 살리고, 이에 [[근초고왕|부여구]]는 다시 [[요서]]로 추방된다.|| ||<^|2>14~36||'''부여구의 역습과 [[네토라레|NTR]]'''||344~346년|| ||||부여준의 딸 부여화는 본래 부여구와 사랑하는 사이였지만, [[고국원왕]]과 정략결혼을 맺음으로써 부여구와 헤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이 와중에 부여구도 요서로 추방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요서에서 칠종칠금과도 같은 대범한 방법으로 부여의 유민들을 포섭한 부여구는 요서군공이라는 국제적으로 무시하지 못할 세력으로 성장하고, 이를 기반으로 진씨 가문과 연합해 계왕을 몰아낸 뒤 자신의 왕위를 되찾는다. 한편 분열된 백제를 침공하려 기회를 엿보던 고국원왕은 역시 부여구에게 관광당하고, 부여화마저 부여구의 품으로 돌아가버린다. 이에 부여구는 근초고왕으로 즉위하며 본부인 홍란이 아닌 부여화를 새 왕후로 맞아들인다.|| ||<^|2>37~46||'''부여화의 수난과 [[출생의 비밀|잃어버린 왕자]]'''||346~354년|| ||||이윽고 부여화와 홍란이 거의 동시에 아이를 임신한 사실이 밝혀지고, 특히 부여화는 고국원왕의 아이를 가졌다는 루머가 퍼지기에 이른다. 마침 전연이 요서로 침공해 들어오자 근초고왕은 이에 맞서기 위해 도성을 떠나고, 부여화는 아이를 조산하면서 루머에 힘이 실려 점점 더 궁지에 몰린다. 한편 절치부심하던 부여찬 과 부여산이 이 기회에 부여화의 두 오빠들을 꾀어 반란을 일으키지만 적절히 근초고왕이 돌아오는 바람에 부여산은 도망치고 부여찬은 죽임을 당한다. 이 난리통에 부여화의 아들은 궁 밖으로 빼돌려지고, 그러나 아들이 죽었다고 생각한 부여화는 근초고왕에게 원한을 품는다.|| ||<^|2>47~60||'''부여화의 흑화와 [[I Am Your Father|내가 네 아비다]]'''||369~375년|| ||||근초고왕이 마한을 정복하고 돌아오자 부여산은 이 틈에 그를 암살하려고 하지만 복구검에게 가로막히고 그의 손에 죽는다. 근초고왕이 전제왕권을 내세우자 이에 반발한 진씨 가문은 부여화와 영합한다. 한편 근초고왕은 대장장이로 살던 부여화의 아들인 쇠꼬비를 발견해 왕자 구수로 삼고, 구수는 직후 벌어진 고구려의 침공에서 홍란의 아들 부여근과 경쟁적으로 전공을 세운다. 이 사이 진씨 가문과 부여화가 도성에서 반란을 일으키자, 구수는 비로소 출생의 비밀을 알고 꿈에 그리던 어머니 부여화를 만나지만 어머니는 이미 불치병에 걸렸던 상태(...). 부여화가 죽자 반란군은 붕괴되고 근초고왕은 그들을 모두 용서한다. 부여근이 사랑하는 [[진구 황후|진구]]와 함께 야마토로 떠나자 이에 구수가 태자가 되고, 근초고왕은 마지막 고구려 진군을 앞두고 천수를 다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