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금강산 (문단 편집) == [[대한민국]] 땅이었다면? == '''[[군사분계선|휴전선]]과 약 20km 떨어져 있고, 삼일포 등의 권역까지 합하면 고작 7km 밖에 안 떨어져 있다.''' 그래서 [[1951년]] 4월 ~ 5월경에 조금만 더 북진을 했으면 금강산을 점령할 수도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올드 밀리터리 계에서는 1970년대부터 있었던 꽤 오래된 떡밥이다.[* 그러나 아예 금강산을 먹지 못하고 어중간하게 북진했다가는 금강산 내부에 군사분계선이 설정되어 금강산 전체가 비무장지대에 갇혀 버리는 사태가 벌어졌을 수도 있다. 조금 더 북진했어도 민간인통제선 위에 있어서 통일전망대 관람 외에는 출입 자체가 힘들었을 가능성도 높고.][[https://news.joins.com/article/4002109|백선엽의 회고]] 즉 [[통천군]] 이남은 모두 금강산 권역이라 할 수 있는데, 이 지역을 다 점령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이므로 참으로 아쉬운 일이다. 다만 지금의 동해안 방면 휴전선은 거의 자연 계곡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군사적으로는 일단 이 지역을 먹는다면 그 다음으로 [[원산시]]까지도 바라볼 수 있다는 의미라 [[6.25 전쟁]]에서 휴전 때까지도 혈전이 거듭되었다. [[금성 전투]] 문서 참고. 특히 정전 협정 체결 직전인 1953년 7월에는 동부전선의 전략적 요충지인 금강산 일대를 두고 한미연합군과 중공군 간에 일진일퇴의 공방이 벌어졌는데, 중공군의 최후의 대공세 직후에 정전 협정이 체결되어 휴전선이 그어지는 바람에 현재 휴전선 동쪽을 보면 남쪽으로 우묵하게 내려온 모양이 되었다. 이 시절 전투 이야기들은 1980년대 정부나 관변단체에서 간행하는 반공물 교재 시리즈의 단골 소재이기도 했다. 그런데 진짜 군사적으로 원산까지 바라볼 수 있었을 정도였다면 서부 전선도 훨씬 북상해서 남한이 [[대동강]] 이남까지 진출해서 [[황해도]]를 전부 먹고 대동강 근처에서 휴전선이 그어졌을 수도 있다.[* 이 대체역사에 대해서는 해당 [[6.25 전쟁/대체역사/38선 이북에 휴전선 형성#s-2.3|문서]] 참고.] 만약 대한민국의 실효 지배 영토였다면, 금강산은 [[한라산]](1,950m), [[지리산]](1,915m), [[설악산]](1,708m)과 함께 대한민국의 4대 명산으로서 으뜸이었을 것이다. 사실 북한뿐만 아니라 남한에도 금강산의 영역이 있다. 휴전선 부근의 [[양구군]]의 가칠봉, [[고성군(강원도)|고성군]]의 향로봉은 전통적으로 금강산의 영역이었고, 설악산의 신선대 또한 금강산의 최남단 영역으로 통했다. 또한 남한 최북단 사찰인 [[고성군(강원도)|고성군]]의 [[건봉사]] 역시 원래는 금강산의 사찰이다. 다만 금강산의 핵심 부분들이 [[남북분단]]으로 인해 모조리 북한 영토로 들어갔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금강산=북한, [[설악산]]=남한 이러한 인식 하에 금강산의 남한 영역들이 설악산으로 새로이 구분되어 인식된 것일 뿐이다. 물론, 설악산 자체도 남한의 그 어느 산과 비교해도 경치가 굉장히 수려하기로 유명하다. '''그래서, 애초부터 금강산과 [[설악산]]은 한 세트로 같은 산이나 마찬가지다.''' 옛날부터 두 산은 사실상 같은 산으로 여겨져 왔고 지금의 [[휴전선]]이 그어지기 전까지 그랬다. 원래 설악산은 '금강산의 남쪽 지역을 의미하는 부속산' 정도의 개념으로 금강산의 최남단 영역을 따로 가리키는 명칭일 뿐이었다. 그런데 옛날부터 금강산의 산세와 인지도가 워낙 넘사벽이었다 보니 [[콩라인]]으로 밀려난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