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금관국 (문단 편집) === 기원후 2세기 후엽 ~ 3세기 중후엽: 금관국의 대두 === 이후 기원후 2세기 말, 격상된 연대론에 의하면 2세기 중엽 이러한 엘리트 계층이 본격적으로 분화된다. 이는 고고학적으로 목곽묘라는 무덤의 출현과 대량 부장 현상으로 나타난다. 목곽묘는 기존의 목관묘보다 비교도 안 되게 큰 매장 공간을 가지며, 이전 시기에 비하면 엄청난 양의 철기 및 청동기가 대량 부장되며, 기존 와질 토기에서 변형되고 소성도가 강화된 '신식 와질 토기'가 부장된다. 이는 기존 지역 엘리트 계층 내에서도 특권 엘리트 계층의 출현으로 해석된다. 이때부터 [[김해]]와 [[창원]], [[진영읍|진영]] 일대의 여러 정치체들이 통합되어 '금관국'을 형성했던 것으로 본다. 아마 설화 속의 [[김수로왕]]은 이러한 여러 정치체들이 연합하여 추대한, 혹은 그들 중 가장 우세한 세력의 대표자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물론 그 인물의 실제 인물이 김수로인지는 미지수이다. 이러한 금관국은 영남 지역의 수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낙동강]] 교통로의 기점이자 관문, 그리고 바다를 통해 [[낙랑]]과 [[마한]], [[왜국]]과의 교통할 수 있는 압도적인 교통로의 우위에 힘입어 다른 영남 지역의 소국보다 우세를 점하게 된다. 특히 당시 국의 생산력과 군사력의 밑바탕되는 자원인 '[[철(원소)|철]]'을 생산하거나 영남 각지에서 생산되는 철기의 유통을 통제하여 왜국과 낙랑에 수출하는 역할을 하면서 영남 지역에서 가장 영향력이 강한 정치체로 떠오른다. 이러한 상황은 3세기 중엽의 한반도 남부의 상황을 전하는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 잘 나타나있으며, 삼국사기 신라 본기 초기 기록에서 나타나는 금관국의 위상에서도 유추할 수 있다.[* 한편 함안 분지의 [[안라국]]도 이러한 과정을 겪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안라국의 경우 함안 지역 내에서의 2세기 ~ 4세기 목곽묘가 충실히 조사되지 않아 알기 어렵지만, 우거리 가마요지나 황사리 고분군 등지에서 발견되는 소위 [[가야토기 #s-3.3|함안 양식 토기]]들이 영남 지역에 전방위적으로 반출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서에서도 금관국과 함께 마한 왕의 우대를 받은 존재로 기록되고 있어 [[안라국]]과 금관국은 일종의 경쟁 관계였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안라는 고고학 자료의 편차로 인해 과소 평가 받는다고 보는 것이 옳다. 안라국은 함안 분지와 구조곡으로 연결되는 진동만 일대를 통해서 단독 대외 교섭을 실시할 능력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후술할 금관국의 낙동강 유역 관계망에 대항하여 [[경상남도|경남]] 서부와 [[남강]], [[황강]] 교통망을 토대로 나름의 세력을 구축했던 것으로 보인다.] 3세기를 기점으로 금관국 내에서도 기존 예안리, 양동리 고분군 축조 세력보다 [[대성동 고분군]] 축조 세력이 결정적인 우위를 차지한다.[* 이렇게 청동기 시대부터 성장한 여러 지역 집단이, 인접 집단과 연합하여 국을 이루면서도 그 흥망성쇠에 따라 주도권을 내어주거나 번갈아가면서 행사하는 경우는 초기 소국 형성 과정 및 초기 국가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고고학의 형제 학문인 인류학에서는 이러한 현재의 사례들을 여러 차례 밝혀놓았다.][* 우리나라 사서에도 이러한 흔적들이 나오는데, 신라의 경우 박, 석, 김이 교대로 왕을 차히자다가 김씨가 독점하게 되는 경우가 그러하다. 특히 금석문에서 6세기까지 여러 명의 왕이 교를 내리는 것도 이러한 흔적일 것이다. 고고학적으로 이러한 현상이 관찰되는데, 특히 일본 고고학에서 같은 토기와 묘형, 제례를 공유하는 지역 집단 가운데 수장묘라 할 수 있는 대형 전방후원분이 시기에 따라 여러 지역으로 옮겨다니며 축조되는 현상이 관찰되거나, 이동하는 현상이 관찰된다. 이에 착안하여 우리 나라에서도 창녕 분지 내에서 대형 수장묘가 영산 고분군에서 북쪽의 송현동, 교동 고분군 이동하는 현상이 관찰되기도 하였다.] 이때부터 4세기 말 ~ 5세기 초까지 풍부하게 출토되는 일본계 유물, 즉 [[야요이 시대]] 석제 화살촉, 방패에 붙이는 파형 동기, 장창의 아랫 부분에 장착하는 통형 동기 등이 당시 왜국, 금관국과의 활발한 교류를 보여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