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금동탑 (문단 편집) === 상세 === 금동탑은 2층으로 된 기단과 그 위에 올려진 5층탑으로 구성된다. 본래는 두어 개 층이 더 있었으리라 추정하므로 높이도 지금보다 더 높았을 것이다.[* 출처: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070012&cid=40942&categoryId=33382|두산백과 - 금동대탑]]] 금동탑은 [[청동]]으로 만들고 위에 [[도금]]을 입혔기에, 만들어진 지 오랜 세월이 흐른 현재는 금빛이 다소 바래긴 하였지만 여전히 화려한 본래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다. 탑의 각 층은 각각 따로 주조한 뒤 합친 것 같다.[* 출처: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2594690&cid=51928&categoryId=54092|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 개태사 금동대탑]]] 금동탑에서는 고려시대 [[목탑]]과 [[석탑]] 양식이 모두 있다. 기단과 머리장식에서는 석탑의 흔적을 찾아 볼 수 있고 난간이나 지붕 등 탑의 전반적인 형태에서는 목탑의 형태가 나타난다.[* 출처: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631820&cid=42679&categoryId=42679|한국 미의 재발견 금속공예 - 금동대탑]]]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국보213호금동탑탑신부.jpg|width=100%]]}}}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국보213호금동탑기단부.jpg|width=100%]]}}} || ||<-2> {{{#fff ''' 금동탑 탑신부와 금동탑 기단부 ''' }}} || 금동탑이 고려 미술의 정수로 꼽히는 것은 이 탑에서 드러나는 정교한 금속공예 기술 때문이다. 본래의 개태사가 폐사되고 땅 속에 파묻히면서 여기저기 손상을 입긴 하였지만, 금동탑에 있는 장식들은 세밀하고 화려하게 치장되었다. 아래층 기단에는 [[연꽃|연꽃잎]]을 새겼고 상층 기단은 [[난간]]으로 둘렀으며 1층 탑 문으로 이어지는 계단을 놓았다. 탑의 1층에는 문과 창을 세밀하게 조형했다. 그 상층부터는 지붕 위에 놓인 난간의 안쪽에 있는 탑신에 불상을 새겼다. 2층의 각 면에는 부처 4좌를, 3층과 4층에는 3좌를, 5층에는 2좌를 새겨서 각 층의 크기에 맞게 불상의 숫자도 줄어든다. 각 층의 지붕에는 [[기와]]와 [[처마]], [[추녀#건축용어]]마루 위에 놓인 [[잡상]] 등을 묘사했다. 추녀의 끝에는 몇 군데에 [[풍경#s-2]]이 달렸고 5층 지붕의 한쪽 면에는 용머리 두 개가 있다. 원래는 모든 층의 추녀 끝에 용머리와 풍경이 달렸을 테지만, 현재는 풍경과 용머리가 일부만 남았다. 탑의 머리장식 역시도 일부만이 남았다.[* 출처: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550818&cid=46657&categoryId=46657|한국민족문화대백과 - 금동탑]]] 금동탑은 고려시대 금속공예 기술의 수준이 상당하였다는 것을 가늠할 수 있는 귀한 자료로, 장식된 금속 조형물들의 수준과 그 세밀한 묘사 정도가 대단히 높아 예술품으로서 가치가 충분하다. 또한 현재 고려시대 목조 건축물 중 남은 것이 거의 없고, 목탑은 아예 단 한 개도 없으므로 금동탑은 당시 목조 건축의 양식을 추정할 수 있는 대단히 귀중한 자료다. 금동탑은 이러한 가치를 인정받아 1984년 8월 6일 [[대한민국의 국보|국보]] 제213호로 지정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